간사와 감사

2024.05.08 16:05:13

스펙트럼

저는 집에 두 자녀가 있고 초등학교 1학년인 6살 딸과 유치원생인 4살 아들이 있습니다. 제가 주로 딸을 재우고 아내가 아들을 재웁니다. 딸아이의 잠버릇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얌전히 11자로 누워서 자는 것이 아니라 발을 구부려서 저쪽으로 제 허벅지나 옆구리를 맞대고 자는데 심한 경우 발바닥이 제 얼굴로 날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편하게는 못잡니다. 중간중간 잠에서 깨서 딸아이를 침대 끝 벽쪽으로 밀어놓고(?) 잠을 자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도 9시에 같이 재우면서 자다가 12시쯤 불편해서 깨버려서 일어난 김에 업무 및 이 원고를 쓰고 있습니다.

 

한달 전에 딸이 같은 침대에서 안자고 요와 이불을 펴고 침대 밑의 방바닥에서 자겠다고 하여 5일 정도 편하게 잔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매우 숙면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삼일째가 되었을 때 침대에서 자는데 뭔가 공허감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수면의 질이 올라가고 이제 밤에 깨는 일도 별로 없겠다고 예상하였는데 안방의 퀸사이즈 침대에서 혼자 누워서 자다가 중간에 깨서 고독한거 같다(?)라는 말도 안되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어쩌면 지난번에 딸아이와 같은 침대에서 잔 것이 마지막이었고 시간이 더 지나면 한 방이 아니라 따로 자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련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수면의 질이 이전보다 그렇게 크게 높지 않고 오히려 허전함에 숙면을 못한다는 말도 안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이틀을 더 잔 것이 집에서 홀로 숙면한(?) 마지막 경험이 되었습니다(적어도 한달 지난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다시 딸이 이제는 바닥에서 안자고 다시 침대에서 저랑 같이 잔다는 말에 기뻐하였지만, 제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 마음에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들까 이틀도 안가더라구요. 한 달이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자다가 중간에 깨서 딸을 침대 끝 벽쪽으로 밀어놓고 자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간사했었던 제 마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지금 이 순간을 불평하기보다 감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라는 문장을 20대 젊은 시절부터 알았지만 일희일비하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감명 깊게 읽은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책의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며 역사 속의 위대한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그리 인상 깊은 부분이 아니었는데 안네 프랑크를 만나고 ‘감사’라는 가치에 대해서 사명선언문 같은 페이지가 있었습니다. 감사하며 행복할 것을 선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십대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이전 칼럼에서 썼듯이 그 시절 저는 불안해했고 인생은 고통이고 경쟁이란 당연하다라는 팍팍한 생각을 주로 하며 살았기에 감사란 상당히 사치스럽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면 현재에 안주하고 더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20년의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지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감사는 현재에 안주하고 미래에 대한 발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제 마음에 부정적인 감정을 넣지 않게 해서 하려는 일에 집중하고 멘탈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힘을 줍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바꿀 수 있는 것보다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에도 한탄하지 않고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노력하는 힘도 줍니다. 

 

그래서 ‘이만하면 다행이다’라는 말을 요즘 자주 씁니다. 이왕이면 ‘지금 감사하고 행복하다’라는 마음이 들면 좋겠지만 그 상태는 일상에서 자주 느끼기에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불과 한 달 전의 딸아이의 변덕에 제 마음은 지속적인 감사를 못하고 간사하게 일희일비 하였습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칼럼에 제 마음의 기록을 남기고 감정이나 멘탈이 흔들릴 때 이 글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다스려보려고 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현재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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