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바르기

  • 등록 2025.09.17 14: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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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대전우체국 맞은편 임 치과에는 발로 돌리는 푸트엔진과 커다란 틀니 제작용 경질고무(Vulcanite) 프레스가 있었다. 대동아전쟁 총동원령 하에 물자가 부족하니까, 인상 채득은 모델링 컴파운드에 모형 복제는 까다로운 아가, 합금은 언감생심으로 크라운은 삼뿌라(Sun-Platina) 판을 두드려 맞추는 둥 열악한 환경에 중노동이었다.


그래도 일제(日帝)는 의(醫)자가 붙은 모든 기관에 쌀 배급을 멈춘 적이 없었다.


해방이 되자 선친은* 오시이레에 걸린 금장식 일본도 두 자루와 수천 권 장서와 지하실 가득 고려자기를, 3층 건물과 함께 일본인 치과의사 이시미츠(石光)씨로부터 인수하였다.

 

미 군정청은 치과에 금과 항생제를 꼬박꼬박 배급했는데 이제 한숨 좀 돌릴 무렵 6·25가 터져, 대전역 폭격에 전 재산이 재로 변하고, 선친은 방 두 칸을 세 얻어 야전체어를 놓고 치과간판을 달았다. 휴전 후, 대동아전쟁 때 피난가려고 산내면 복호리 산중에 지은 집을 헐었다가, 철도청에서 불하받은 정동에 단층집을 짓고 치과를 옮겼다. 용운동 할아버님 댁에 피난 갔던 유니트체어에, 불 탄 체어를 사포질과 페인트로 재생하고, 야전체어와 도합 3대로 구색을 갖추었다. 부정 유출된 리도카인이 흔해도, 외과용 프로카인 분말을 증류수에 용해, 소독한 앰플에 넣어 쓰며 비용을 아끼셨다. 다시 타의에 의한 세 번의 껄끄덩이(재산을 날린다는 표현)를 이겨내고 건물을 두 번 더 지어 치과를 옮기며, 지극히 원시적인 치과진료로부터 가장 현대식 치료법까지 급변기를 견디며, 10남매를 키워낸 저력은 감탄 불금이다. 당시의 치과계 선배들은 너나없이 그렇게 어려운 터널을 지나왔다.

 

어려서부터 눈 밑이 그늘지고 체구가 작아 중고교 때 기계체조로 힘을 길렀다. 70이 다 되어 대동맥 판막증을 찾아냈는데, 동맥혈 절반이 그냥 되돌아오니, 초중고 때 연중 지각·조퇴 세 자리까지 기록한 ‘지각 대장’이, 지구력 부족 탓이라는 이유를 발견한 셈이다. 그래도 공부량 대비 성적이 예상외로 잘 나온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꿈보다 해몽이라니, 당시에는 주관식 문제가 주류니까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엉뚱한 풀이를 해본다. 결국 모의고사나 학력 경시대회 성적 등 지원 대학을 편하게 고를 수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치과대학을 선택한 건 내 결정이었다.

 

선친이 법대를 바란 형님이 서울의대 수석을 했으니, 나에게도 몸이 고된 치과보다는 법대를 원하셨는데, 나는 문(文)과라서 안 된다며 고집을 부렸다. 막상 수석 입학이라고 신문 방송에 뜨고 여기저기 축하선물이 쏟아지니까, 선친께서 뜬금없이 “영화나 한 편 보자” 하셔서 본 것이 테리 무어 주연 ‘천과 지’였던가? 본과 1학년 봄에 갑자기 전화를 받고 서울역에 나가니, 협회 사무국장 ‘최효봉’님과** 인사를 하란다. 셋이서 남대문 ‘금강치재’에 들러서, 사장님 안내로 용산 공장에 갔다. 첨단업체라는데, 본체는 쇳물로 주조하고 유닛은 수도파이프를 잘라 붙이며 승강 장치는 펌프식이었다. 본과에 올라간 아들을 위해 해방 후 20년 만에 새 치료대를 주문한 것이다. 평생 어깃장만 부리던 불효자식이 든든한 아버지를 믿고 치과대학을 선택했으니, 무뚝뚝한 아버지는 가업을 이어가겠다는 그 뜻에 무척 뿌듯하셨던 것 같다.

 

필자는 추억이라는 영어 Reminiscence보다 불어 어원의 Souvenir가 좋다. 전자가 라틴어인 ‘되돌아보기’라면, 후자는 추억이 남긴 기념품, 즉 선물이다. 인생은 ‘경로 반복의 축적물’이라고 말한다. 이기적인 두뇌는 그 반복과정 중에서, 아픈 기억을 세탁하고 즐거움은 부풀리는, 소위 ‘뽀샵’을 한다. 추억의 아름다움이란, 옛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고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나는 기쁨보다도, 그곳이 나의 기억을 예쁘게 발효시킨 나만의 궁전이기 때문이 아닐까? 동작명사와 물질명사를 구태여 가를 필요는 없어도, 기억의 축적물이라는 의미가 강한 Souvenir에 더 정이 간다. 십여 년 전 갑자기 옷핀을 쓸 일이 생겼다. 눈만 흘겨도 휘고 구부러지는 ‘중국제’만 널렸지 국산이 보이지 않아, 중앙시장을 한참 헤매고서야 딱 한군데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대박!,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양키시장 골목’을 만났다.


겨우 두 사람이 지나갈 좁은 골목 안, 다닥다닥 붙은 한 평 남짓한 점포에 길쭉한 아이보리 비누, 태블릿 초콜릿과 리츠 크래커 등, 팍팍한 전후에 어린 눈을 홀렸던 알록달록한 미제물건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 가운데 눈을 사로잡은 것은 낯익은 초록빛 유리병, Skin Bracer였다. 뚜껑을 여니 연한 향기에 추억이 뭉클한데, 이제는 한국 공장에서 만든다고 한다. 후각(Olfactory)신경은 뇌신경 1번으로 뇌에서 가장 단거리에 있어, 냄새는 곧 기억의 안내자요 길동무(Usher & Buddy)다. 그래서 엄마 기억은 나물냄새요, 아빠 추억은 애프터 셰이브라던가?


우리는 남성화장품 문화를 미군부대에서 나온 스킨로션으로 배웠다. 줄임말 ‘스킨’ 자체가 Skin Bracer에서 나온 것이니까... 사용법도 좀 다르다. 벌초구역이 넓고 울창한 육식동물 코카시언은 손바닥 가득 로션을 부어 철퍼덕 껴얹는데, 터가 좁고 성긴 우리 초식동물은, 서너 방울로 얼굴을 토닥토닥 두드리면 그만이다(Hirsute Carnivores Splash, Sparse Herbivores Dab). 큰 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 냄새는 하얗고 예쁜 도자기병에 담긴 Old Spice였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스킨을 바꾼 지 어언 10여 년, 오늘도 나는 면도한 자리에 투명한 초록빛 추억을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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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혁(1908-1986): 4년제 경성 치과의학 전문학교 4회, 1933년 졸업.
**최효봉: 풍채도 목소리도 장군감이던 그분을 필두로, 협회사(史)에서 사무국 식구를 재조명하는 페이지를 보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중 치협 대의원총회 전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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