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이 덮친 병원 (1)챠리티의 유산

  • 등록 2026.08.19 15: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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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미국 뉴올리언스 내 병원 대부분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때의 재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원 역시 자연재해를 피해 갈 수 없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 많은 숙제를 남긴다.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치면서 도시의 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홍수가 도심을 휩쓸어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고, 1,80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고립된 이재민은 미식축구 경기장(슈퍼돔)에 6만 명, 뉴올리언스 컨벤션 센터에 2만 명 이상 수용되었다. 하지만 전기, 수도, 화장실 등 일체의 인프라가 마비되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도시 곳곳에서 약탈과 총격이 난무하였다. 처음에는 구조대가 올 것이라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자, 생존을 위해 약탈의 대열에 합류하기도 하였다.

 

도심이 섬처럼 고립되는 상황이 벌어진 그 당시, 슈퍼돔에서 한 블록 거리에 그 지역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챠리티 병원(Charity Hospital)이 있었다. 그곳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LSU) 병원 시스템 내 가장 큰 수련병원으로, “지불 능력과 관계없이 최고의 치료를 제공한다”는 설립 신념 아래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들 보험이 없는 외상 환자, 중증 정신질환자, 총상 환자, 수감자 등을 치료하던 지역 유일의 1급 외상센터(Level I Trauma Center)였다. 루이지애나 시민들은 이 병원을 ‘빅 챠리티(Big Charity)’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허리케인 이전에는 연간 20만 명의 응급환자를 치료할 만큼 병동이 늘 가득 찼다. 병원 운영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챠리티 병원은 지역 주민들이 진심으로 신뢰하는 병원이었다. 이곳에서 루이지애나 주립대 구강악안면외과 역시 수술과 입원 진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8월 30일, 챠리티 병원 건물 지하로 물이 급속도로 밀려들면서 발전기와 펌프가 마비되었고, 전기와 수도 등 병원의 모든 기능이 중단되었다. 비상 발전기의 연료마저 바닥나 에어컨이 꺼지자 실내 온도는 38도 이상으로 치솟았다. 대부분의 병원 직원들은 전날 허리케인 경보를 듣고도 환자들을 위해 대피하지 않고 병원에 남았다. 지상 1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의료진은 환자들을 급히 계단으로 실어 올렸고, 2층 강당을 임시 중환자실로 만들어 정전된 인공호흡기 대신 앰부백(Ambu bag)을 수동으로 짜며 환자의 호흡을 이어갔다. 병원은 호수 속 섬처럼 고립되어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었지만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통신마저 두절되고 식량도 바닥나 언제 상황이 좋아질지 모르는 절망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의료진은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간간이 통신이 복구되면서 병원에 남은 직원들은 주정부나 재난대책본부가 이 병원에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조대가 오지 않자 침대보에 “우리가 여기 살아 있다(We Are Alive)”라고 적어 건물 벽에 걸어 두기도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9월 1일이 되자 길 건너 사립 툴레인(Tulane) 대학병원의 주차장 옥상으로 많은 헬리콥터가 오가며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이 보였다. 의료진은 챠리티 병원 환자들도 구조받을 수 있도록 침대에 누운 환자들을 그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구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모든 환자를 헬기로 이송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위험이 따라 결국 이송이 중단되었다.

 

이후 챠리티 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는 집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딸을 구하러 오겠다는 전화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실제로 보트를 타고 물바다가 된 병원으로 찾아왔다. 극적으로 부녀가 상봉했지만, 수간호사는 수많은 환자를 두고 혼자만 떠날 수 없다며 아버지를 돌려보냈다. 아버지는 딸을 두고 그냥 돌아설 수 없어 동료들과 함께 여러 대의 에어보트(Airboat)를 끌고 다시 돌아왔고, 하루 종일 챠리티 병원의 환자들을 이송하였다. 이 덕분에 병원에 남아 있던 350명의 환자와 1,000명 이상의 의료진 및 시민들이 무사히 병원을 탈출할 수 있었다. 모든 보급과 전기가 끊긴 닷새 동안 의료진이 펼친 고군분투 덕분에,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던 중환자 중 목숨을 잃은 이는 불과 3명에 불과했다.

 

당시 병원에 남아 있던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들은 엘리베이터가 멈춘 입원 병동에 갇힌 환자들을 7층 높이의 계단으로 일일이 옮겨 나른 뒤, 가장 마지막으로 보트에 몸을 실었다. 이후 인근 배턴루지(Baton Rouge)에 임시 거점을 마련하여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전공의들이 머물 숙소가 없어 아파트 한 채를 빌려 10여 명이 넘는 수련의가 한집에서 숙식하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를 강타한 지 한 달이 지난 2005년 9월 말, 보스턴에서 미국구강악안면외과학회(AAOMS) 연례학술대회가 열렸다. AAOMS는 학술대회가 끝날 때까지 루이지애나 주립대 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의들을 위한 기금으로 현장에서 5만 달러를 모금했고, 참석했던 영국구강악안면외과학회 회원들도 5천 달러를 기부하였다. 당시 AAOMS 총회에서 루이지애나 주립대 구강악안면외과의 마이클 블록(Michael Block) 교수가 공로상(Distinguished Service Award)을 받았다. 그는 챠리티 병원에 남아 있던 구강악안면외과 수련의들의 상황을 전하며, “우리 전공의들이야말로 카트리나 재난 속 진정한 영웅이었으며, 모든 영광을 그들에게 돌린다”고 목이 멘 수상 소감을 남겼다. 그 연설을 들으니 나도 눈물이 났다.

 

뉴올리언스의 재난 이후 전 세계 병원의 비상 관리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핵심 기반 시설을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옮기고, 냉난방 및 환기 시스템도 비상 전원으로 구동되도록 개편되었으며, 위기 상황 시 환자 이송‧분류 지침(Triage)도 새롭게 정립되었다.

 

챠리티 병원에서 물이 모두 빠진 뒤 본격적인 복구 작업과 방역 작업이 진행되었다. 군부대가 투입된 지 3주 만에 병원 지하부터 지상까지 완벽하게 복구되었고, 병원 직원들은 다시 환자들을 맞이할 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루이지애나 주립대 병원과 주정부는 인근에 새 병원을 짓기로 결정하고 챠리티 병원의 재개원을 중단시켰다. 경영진과 주정부가 소외계층을 위한 필수 의료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적이었으며, 새 병원에서는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이상의 환자들도 유치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1736년부터 2005년까지 269년 동안 챠리티 병원이 품어 온 고귀한 이상, ‘자선의 정신(Spirit of Charity)’은 막을 내렸다.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은 2026년 현재까지도 비어 있다. 버려진 병원 건물 로비에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곳(Where the unusual occurs and miracles happen)”이라는 문구가 여전히 남아 뉴올리언스 시민들의 마음에 살아있다. 재난으로 병원 시설과 시스템이 마비되었을 때 마지막까지 작동하는 것은 결국 “사람” 이었으며, 환자를 버리지 않은 의료진의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대근 경북대학교 치과병원장·구강악안면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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