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 구조주의 인류학>
지난 반세기를 돌아다볼 때 사유의 대상에 있어서나, 양태에 있어서나, 글쓰기에 있어서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구조주의의 등장은 서구적 사유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담론사 전체에서 굵은 획을 그었다. 그 이유를 미리 설명하기보다는 개별적인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 때마다 맥락을 설명할 것이다.
구조주의적 사유 양태란 무엇인가를 개념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우선 구체적인 하나의 예를 듦으로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하나의 예: 토테미즘
토테미즘의 예: 토테미즘이라는 현상은 옛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기존에 제시된 이론들과 구조주의 이론의 차이를 살펴봄으로써 구조주의적 사유 양식이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해 보자.
토테미즘과 애니미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애니미즘(物活論)은 세계 전체가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 신성한 힘에 의해 가득 차 있다는, 선사 시대 사람들의 일반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이고, 토테미즘이란 특정한 한 씨족부족이 특정한 어떤 존재(특히 동물)와 자신들 사이에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토테미즘은 처음에는 그저 미개인들의 괴상한 면모라고 가볍게 치부되었으나 인류학(anthropologie), 민족학(ethnologie)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면서 그 의미가 다각도로 파헤쳐졌다.
각 씨족들은 자신들의 토템을 먹거나 해치지 않는다. 이것을 금기(taboo)라 한다. 그러나 일정한 시점에서는 - 제의시(祭儀時) - 오히려 그것을 죽여서 먹는다.
기존의 이론들 중 몇 가지를 보자. 우선 토테미즘을 즉물적으로 해석한 경우가 있다. 거북이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은 진짜 거북이와 비슷하고, 늑대를 토템으로 하는 씨족 은 진짜 늑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컨대 후자의 부족은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한다는 황당한 해석까지 있었다. 이런 해석은 토테미즘을 너무 즉물적으로 해석한 것이며, 거기에는 미개인을 동물과 유사한 존재로 보는 편견이 깃들어 있다.
이보다 나은 것으로 이런 즉물적 해석이 아니라 토템을 일종의 상징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런 생각은 오늘날 OB 베어스, 한화 이글스, 삼성 라이온스 같은 표현들에도 남아 있다. 그러나 앞의 해석이 즉물적인 해석이라면 이 해석은 반대로 너무 현대적인 해석이다. 미개인들이 상징이나 문장(紋章)을 사용했다는 것은 현대인의 생각을 미개인들에게 투영한 것이다.
프로이트는 『토템과 타부』(1925)에서 토템 현상을 그의 정신분석학을 가지고서 설명하려 했다. 그는 토템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서 설명했으며, 토템과 씨족 사이의 이중적 관계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愛憎으로 해석했다. 토템은 神=父에 대한 상징이며, 미개인의 토테미즘이란 유아의 신경증과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현대인의 정신 상태를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신병리적 개념을 미개인들에게 투사한 전형적인 환원주의적 시각이다. 인간과 사회를 생물학적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사회생물학이나 지성사까지도 모두 사회적 맥락의 결과로 설명하려는 사회학적 환원주의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듯이,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론을 다른 분야로 무반성적으로 투사할 때 이런 무리가 발생한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미개인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독립적인 사유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리 형성된 자신의 이론을 다른 영역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다(그의 미학도 마찬가지이다).
인류학에서 독보적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는 레비-브륄(Claude Levy-Bruhl) - 베르그송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 은 미개인을 동물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하는 존재로 보았다. 다만 그는 미개인도 나름의 독특한 논리, 즉 전논리(prelogique)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말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떤 사람의 모형을 만들어놓고서 그것을 송곳으로 찌르면 그 사람의 그 부위가 아프다고 믿는 것이다. 또 만일 누군가가 어떤 악어를 죽였다면, 그 동족 악어들이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 한 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레비-브륄은 이런 식의 전논리를 신비적 융합설이라 불렀다. 구분해야 할 것을 기묘하게 융합해서 본다는 뜻이다. 미개인과 어린아이를 유비시키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물론 19세기적인 진화론적 생각이 깔려 있다. 꽁트의 지식 삼단계설(신학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과학적 단계)를 확장시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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