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강신익/전문직의 생존권

  • 등록 2005.03.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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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에는 참 섬세한 구석이 많다. 문자로 표현하면 똑같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억양, 또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 몇 해 전 어떤 드라마에서 한 여배우가 유행시켰던 ‘잘났어! 정말’ 이라는 말은 분명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경멸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진 것이었는데, 문자 그대로의 뜻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처럼 똑같은 문자구조를 가졌더라도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우리가 문장의 형식적 의미구조보다는 문자가 담지 못하는 다양한 삶의 맥락과 감성을 중시하는 민족이라는 살아있는 증거일 터이다.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형식적 문자구조 속에도 미묘한 감성의 차이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스럽다’와 ‘~답다’는 말의 차이가 대표적 예일 것이다. 전자는 주로 부정적 함의를 가진 반면 후자는 주로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증스럽다’, ‘이상스럽다’, ‘수고스럽다’ 등의 말들은 모두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반면, ‘사내답다’, ‘정답다’, ‘꽃답다’, ‘인간답다’ 등의 말은 사내, 정, 꽃,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는 경우에 사용된다.


참여정부 초기에 대통령과 소장 검사들 사이에 벌어진 공개토론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젊은 검사들은 지휘체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마치 피의자 심문하듯 몰아붙여 달라진 세상을 실감케 했다. 어떤 사람은 법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고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므로 당연한 일이라고 했지만, 많은 네티즌들은 ‘검사스러움’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그들을 조롱했다. 이 말을 만들어낸 네티즌들은 우리의 현대사 속에서 검사들이 담당했던 부정적 역할과 이미지,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던 무소불위의 권력에 속수무책이던 민중의 원망 등을 이 말 한마디에 담아냈던 것이다. 이처럼 한마디 말 속에는 엄청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중의 정서가 응축돼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고난 지 불과 2년 뒤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 2’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검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검사스러움’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낸 ‘검사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부패한 사업가와 결탁한 부당한 권력에 당당히 맞서면서도 따뜻한 인간의 정을 잃지 않는 영화 속의 검사는 분명 영화라는 허구 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대중의 반응은 2년 전과는 전혀 딴판인 것 같다. 검사스러움에 대한 냉소와 조롱은 영화 속 주인공의 검사다움에 대한 찬미와 현실 속 검사들에 대한 은근한 기대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관찰에는 현실과 허구를 뒤섞음으로써 무척이나 불합리한 결론을 이끌어낼 위험성이 내포돼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검찰이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자기쇄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부 시민들은 대선자금 수사에서 정치적 압력을 배제한 채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한 검사들에게 보약을 제공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으니 얼마나 커다란 변화인가?
직업사회학에서 법조인, 종교인, 의료인은 전문직(profession)의 속성을 가진 대표적 직업군으로 분류된다. 그들이야말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함께 갖추지 않고는 존재할 수조차 없는 공익적 성격의 직업인이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법률ㆍ종교ㆍ의료 서비스마저도 돈이 매개가 돼야 하지만, 일반 서비스 상품에는 없는 전문성, 공익성, 도덕성, 이타성이 본질적 존재조건이라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구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2500년 전에 씌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직도 선언(profess)되고 있는 근거다.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전문지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생존권’이라는 단어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 말이 지금보다 더 많은 경제적 여유만을 뜻한다면 전문직으로서의 존재근거가 크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높은 사람에게 대드는 패기와 용기보다는 각종 압력과 회유를 견디어 내면서 묵묵히 본연의 업무에 매진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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