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일단 비판적으로 바라보면, 윤리라는 것은 가치의 강요라는 점에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윤리는 타인과 기존의 관념에 강제적으로 매몰되는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미끼로 만들어진 많은 것들이 - 즉 외면적으로는 사회적 규범과 내면적으로는 금욕주의적인 강박관념들이 -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자에게 수치와 모독, ‘사회생활’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통해, 삶의 의미를 빼앗아 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윤리나 법을 비롯한 사회적인 규제가 없이 사회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은 전제적인 제도나 타성에 의해 구축된 윤리를 옹호하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재림한 구세주는 인간의 본질에 접근해, 자유로운 사고 아래 스스로 정립된 도덕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한다. 하지만 대심문관은 결코 그러한 구세주를 원하지 않으며 그를 핍박한다. 한번 구축된 질서나 윤리는 그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방어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치와 윤리는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가치와 윤리는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보편적이라 믿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고찰해보아야 하며, 자기 스스로의 기준을 만들고, 그러한 기준위에 윤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윤리가 비록 개인적으로 만들어야할 무엇이라고 할지라도, 각기 개인이 만들어낸 윤리들은 어느 정도 공통된 준거를 만들어 낸다.
개인의 삶보다 치과의사로서의 업무보다 중요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는 개업의로 진출해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반대로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 일생을 이 길에 바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치열하게 환자와 부대끼며 개인생활을 희생해가면서 자신의 삶을 꾸려갈 것이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의 가치 판단은 무의미하다. 자신만의 윤리를 만들어내는 준거가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만들어내는 과정이 합리적이라면, 다 의미가 있고 훌륭한 삶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는 준거를 어느 정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비록 이 또한 회의적인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지라도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이렇다.
첫째로 치과의사는 실력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둘째로 균형적인 윤리 의식이 있어야 한다. 맹목적인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합리적인 상황파악과 사고과정을 통한 ‘균형적인’, "통상적인 도덕‘을 가치를 배껴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윤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 하는 모든 이의 윤리는 구축하는데 가장 기반이 되는 준거는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알며, 고통을 치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일 것이다.
셋째로 인간을 대하는 자로서의 교양이다. 교양이란 자신을 쌓아가는 예술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교양도 바람직하지만, 그 자체가 추구해야할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사람을 대하는 자로써 사람의 마음을 갖춘 자의 자격은 ‘덕’다음에는 교양이 아닐까?
치의학은 배타적인 지식권력이며, 치과의사들은 서비스의 독점권을 가진 자들이다. 우리 집단은 의술을 행하는 대상인 환자들로 이루어진 국민들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환자 개개인의 아픔을 느끼는 것을 넘어, 사회의 기능을 유지하는 한 직업 집단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사회과학적인 자각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최소한의 규칙과 규범들로 인해 치과의사 개개인이 행동한다면, 치과의사 집단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한 행동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치과대학생이 쓴 치과의료 윤리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