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올해의 치과인 상’ 수상 한 송 총장]30년 걸릴 대학 인프라 10년만에 해결

2009.12.14 00:00:00

30년 걸릴 대학 인프라
 10년만에 해결
괴력(?)총장님


‘2009 올해의 치과인 상’ 수상 한 송 총장


“94년 강릉치대 첫 교수 인연
 총장 재선 대학발전 중추 역할
 질 높은 교육 위해 매진 할 것”


“대학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자는 신념으로 그동안 치대 학장으로서, 병원장으로서, 총장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한 것 뿐인데 이렇게 과분한 상을 받게 돼 다른 훌륭한 분들께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본지가 제정한 ‘2009 올해의 치과인 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 송 국립 강릉원주대학교 총장은 “저에게 보내준 치과계의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치과계 발전과 위상을 드높이는데 헌신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총장은 서울치대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분자생물학과 생화학 전공)를 취득하고, 1994년 40대 후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당시 강릉대학교 치과대학 생화학교실 교수로 부임해 강릉대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2년뒤 학장으로 취임한 이후 200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달아 치과대학 학장을 연임하는 동안 치과병원 설립을 비롯해 치대 교수 정원 확보, 치대 및 치과병원 기자재 예산 확보 등 강릉치대와 치과병원의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한 총장은 “오랜 외국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 강릉대에 와서 보니 국립대임에도 불구하고 지방대학의 열악한 환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당장 치과병원을 설립하는데 필요한 예산확보 등 해야 할 일들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고 회고했다.
대학건물도 몇 개 되지 않았고 비만 오면 캠퍼스는 온통 진흙밭이 되기 일쑤였다. 교수연구실도 부족해 좁은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오랜 외국생활을 마치고 바로 강릉으로 와 연고도 친구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 집도, 자동차도 없었다. 그래서 연구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전기난로에 의지한 채 잠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대학의 열악한 환경은 오히려 한 총장을 더욱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치과병원 설립을 위해 한 총장은 정부 기획예산처를 내 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렸다. 당시 인구 15만의 강릉에서 2200평 규모의 치과병원이 들어선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한 총장은 기획예산처와의 예산확보를 위한 끈질긴 노력 끝에 결국 건축비 99억원과 기자재비 1백1억원을 지원받아 그 당시 서울대병원 다음으로 최대 규모의 치과병원을 설립했다.


아울러 1997년에는 강릉대 초대 치과병원장으로 취임해 최초의 독립적인 국립치과대학병원 설치를 이룸으로써, 국립 치과대학병원 독립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대내외에 알리는데도 기여했다.
또 정부 관계부처를 설득해 불과 2년동안 치대교수 정원을 22명까지 확보하는 괴력(?)도 발휘했다. 교수정원 1명을 확보하는데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이와 함께 치과대학의 치학2호관도 완공시켜 교수연구실을 비롯한 학생실습실, 동물실험실, 사체처리실, 치의학도서관 등 치대생들의 임상교육 인프라 구축도 실현했다.


1998년에는 ‘신설 치과대학 준칙 안’을 정부에 제출해 치과대학이 타 단과대학에 비해 교수정원, 시설 및 기자재 예산 배분 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국내 치의학 교육기반을 정립하는데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후발 의치대 지원사업’을 제안해 치과대학 기자재 예산을 매년 10억씩 5년간 지원받는데도 힘썼다.


한 총장은 “솔직히 그때를 떠올리면 초인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것 같다”며 “밤잠을 설치는 것은 예사였으며, 강릉에서 오고가기 어려워 아예 기획예산처, 교육인적자원부, 행정자치부 등 당시 관계부처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놓고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해 나갔다”고 말했다.
한 총장에 따르면 “치대 학장시절 내 집처럼 관계부처를 드나드니 나를 모르는 공무원이 없을 정도였으며, 나만 보면 담당 공무원이 슬슬 피할 정도였다”고 웃어보였다.


학장 및 병원장으로서 강릉치대와 치과병원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한 총장을 보고 총장 출마를 권유하는 대학 관계자들이 늘기 시작했고 한 총장 역시 기초치의학자로서의 연구자의 길과 행정가의 길 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을 거듭하다 출마를 결심, 2003년 국내 최초로 치과의사 출신 국립대 총장 탄생을 알렸다.  


총장에 당선된 후에도 한 총장의 행보는 더욱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정부의 국립대학 구조개혁 정책에 맞춰 국립 원주대학과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대학 통합 과정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학내 일부 학과의 반대와 강릉시와 원주시의 경쟁적 갈등구조도 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총장은 대학 통합에 따른 대학명칭문제를 비롯해 양 도시간의 갈등 등 각종 걸림돌을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통합을 이끌었다.


또한 총장 재임 중 교육역량강화사업, BK21 사업, R&D 클러스터 사업 등 많은 국책사업을 유치했고, 지역에 1백억 규모의 해양생물교육연구센터 설립에도 앞장서 이뤄냈으며,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강릉분소 및 슈퍼컴퓨팅센터 등 국가기관을 유치하는데도 중추적 역할을 했다.


또한 한 총장은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교무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대 총장 가운데 처음으로 교무 회의록을 녹취해 모두 공개했다. 이후 대학 행정 및 경영과 관련된 모든 잡음들이 사라져 갔다. 
이런 성과들은 한 총장을 다시 총장에 재선시키는 주춧돌이 됐다. 심지어 각 단과대학마다 한 총장이 손대면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란 소문까지 돌 정도로 그 어렵다는 총장 재선을 자연스레 이뤄냈다.


한 총장은 처음 총장선거 때에도 달성 가능한 공약만 내걸었다. 10가지의 대표공약 중 9가지는 약속을 지켰고 나머지 한 가지도 관련법이 개정되지 않았다면 임기내 가능했었다. 공약사항 외에도 이룬 업적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 1994년 강릉대와 인연을 맺어 치대 교수, 치대학장, 치과병원장, 총장 등을 지내오면서 참으로 바쁜 세월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욕먹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질 높은 교육을 위해 더욱 매진하게 됐고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한 총장은 치과계 후배들에게도 조언했다. “처음부터 학장, 병원장, 총장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다보니 자연스레 운명처럼 따라왔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여건이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면 반드시 결과가 좋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독서가 습관이 돼 요즘도 한 총장은 항상 책을 끼고 다닌다.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숨가쁜 스케줄 속에서도 짬을 내 책을 보곤 한다. 어떤 분야든 가리지 않는다. 한 총장의 해박한 지식은 어떤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도 금방 말문을 틀 정도다.


“대학 캠퍼스가 참 예쁘다”고 표현하는 한 총장은 대학 캠퍼스를 거닐 때마다 본인이 직접 완공한 많은 건물들을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대학건물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한 총장이 직접 지은거나 다름없다. 지금도 캠퍼스를 걷다보면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늘 생각하곤 한다. 더불어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하드웨어적인 것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발 부분도 신경써 추진하고 있다.   
끝으로 한 총장은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공직에 있는 동안 및 퇴임 후에도 치과인으로서 치과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찾아서 할 생각이다”며 치과계에 대한 애정도 잊지 않았다.

■한 송 총장은…


한 송 총장은 서울대학교 치의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코네티컷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1994년 강릉대학교(現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인연을 맺은 이래 1996년 강릉대학교 치과대학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200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달아 치과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이 기간 동안 치과대학 학장협의회장과 치과대학교육협의회장을 맡았고, 1997년에는 강릉대 치과병원 초대 병원장도 겸임하면서  ‘신설 치과대학 준칙 안’을 정부에 제출해 국내 치의학 교육기반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폭넓은 역량과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아 강릉대 치대 교수로 부임한 지 9년여만인 2003년도에 국내 최초로 치과대학 교수 출신 국립대 총장으로 선출됐으며, 이어 2007년도에 총장에 재선돼 현재까지 치과계 및 대학교육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현재 강원도 대학총장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신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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