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순희 월요시론] 사랑 유감

2010.07.12 00:00:00

월요 시론

 신순희 <본지 집필위원>

 

사랑 유감

 

“사랑도 죄가 되나요?”
신파 멜로드라마의 단골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때론, 매우 그렇다”이다. ‘사랑’이라 하면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에 속한 그 무엇인가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은 대부분 어떠한 ‘행동’이다. 사랑의 실천이라고도 하고 사랑의 표현이라고도 하는 어떠한 행동은 자칫 사랑의 대상을 행복이 아닌 고통에 빠뜨리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성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이 때론 스토킹이 되고 자녀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때론 집착이 되며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 때론 독일식 나치즘이나 일본식 군국주의가 되기도 한다. 사랑이 폭력의 경계를 넘는 순간, 언제나 오래참고 언제나 온유하다는 사랑의 본질은 집나간 지 오래고 그저 사랑으로 위장된 위험한 욕망만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 두 종류의 나라사랑이 있다. 한쪽은 정부의 천안함 조사결과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NGO서한을 유엔에 보냈다. 다른 한쪽은 시너가 담긴 소주병과 LP가스통을 들고 그 NGO사무실을 찾아갔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극한 의견대립을 보이는 양쪽 모두 애국을 말하고 공동체의 안위를 걱정한다. 무엇이 나라사랑이냐의 가치 판단이 다르고 무엇을 더 중요하게 사랑하느냐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이같은 대립은 사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끊임없이 있어왔다.


1894년, 프랑스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드레퓌스 대위가 독일에 군사정보를 판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정보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게 유일한 증거였지만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의심은 깊어졌고, 후에 그가 진범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군 당국은 사건을 은폐하였다. 그러다가 18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당대의 저명한 소설가 에밀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공개 논설을 통해 군의 사건 은폐를 비판하면서 사건은 프랑스 사회의 주요 이슈로 재 부상한다. ‘정의, 진실, 인권’을 옹호하는 자유주의 지식인들, 사회당, 급진당의 “인권동맹”이 결성되었고, 이에 맞서 ‘국가와 군의 질서와 명예’를 부르짖는 국수주의파, 교회, 군부의 “조국동맹”이 결성되어 격렬히 대립하면서 프랑스 사회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었다. 결국 드레퓌스는 1906년 최고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고 훗날 이 사건은 그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으로서 프랑스의 인권 발전과 민주공화정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역사에 기록되었다.

 

다름은 나쁘지 않다. 그것은 생명의 지속가능성이기도 하고 공동체의 풍부한 성장 가능성이기도 하다. 아마 조국동맹과 인권동맹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과 방식이 달랐을 뿐 프랑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의 다름이 이후 인권과 민주주의 선진국 프랑스를 만든 밑거름이 되었듯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다양한 나라사랑과 그로 인한 대립도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논쟁과 대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간의 예의와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자기주장이 폭력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랑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 조국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든 그 애국충정이 얼마나 절절한 것이든 말이다.

 

얼마 전 주말, 명실상부 국제적 행사로 발돋움한 SIDEX 행사장에서 “여학생과 군필자 신입생이 많아져 치과진료의 질이 떨어지니 국민보건건강 향상을 위해 사랑하는 모교를 치전원에서 치과대학으로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모 동창회 회장과 회원 일동의 글이 뿌려졌다. 모교를 사랑하고 치과계를 걱정하고 국민 건강을 위해 행동에 나선 절절한 마음은 알겠으나 특정 집단에 대한 근거없는 비하를 기반으로 한 주장은 위험하다. 애틋한 모교사랑을 위해 누군가가 근거없는 폄훼를 당한다면 그 사랑은 상대방을 해치고 나를 해치고 종국에는 사랑의 본질마저 해치게 된다.
때로 사랑이 죄가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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