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치의신보 편집인 한마디
“그땐 그랬지”
변영남(22대)
1993.5.1~1996.4.30
현재 개원하고 있으며,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치과진료팀장, 성가복지병원 치과진료팀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전 집행부에서 시작한 치의신보 독립을 마무리 했다. 필리핀치과대학 교육 현황을 조사하고 책자를 발간해 외국인 예비시험제도의 개정의 근간이 됐으며, 근로자 구강검진과 관련된 노동부 법령을 개정했다. 광고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제도를 확립했다.
역대편집인 특별기고를 권유한다. 치의신보 인사를 합리화하고 치과문인회와 유대를 강화했으면 한다. 치과계의 관심사를 중점적으로 선도해 나가기 바란다.
김석균(23~24대)
1996.5.1~2000.4
메디파트너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중국 및 아시아의 의료수출에 대해 관심이 많고 한류를 업고 치과도 해외에서 매력있는 분야이다.
가로쓰기 편집을 한 것이 기억에 난다. 치의신보 전직원이 일주일에 한번씩 치과 업무와는 관계없는 경제 및 시사관계 자체 세미나를 했었다.
환경이 좋아진만큼 일반신문사에서 일하는 중견급 기자를 영입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 장기적으로 치의신보가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지학(24대)
2000.4~2002.4.30
현재 연세치대 동창회장을 맡고 있다.
당시 공보이사로서 공보와 홍보 업무 모두 맡아했다. 이후에는 공보와 홍보이사로 나눠졌다. 과학기자클럽에도 자주 나가고 언론사 부장급 인사들과도 모임을 가졌다. 기사마감시 정확한 기사가 나가도록 하기 위해 2년동안 신문제작하는 곳에서 기자들과 밤을 세워 일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광고면도 고려해 섹션신문을 만들어 학술면을 다양화시켰다.
주2회 나오면 정보가 빨리 나와야 한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인터넷신문처럼 바로 올릴 수 있게 발전했으면 한다. 신문과 병행해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송요선(25대)
2002.5.1~2005.4.30
치과의사 본연의 임무인 환자진료에 전념하고 있다.
치의신보 주2회 안정과 치의신보 창간기념식을 지키기 시작했다. 창간기념일에 올해의 치과인상 제정 및 시상을 시작했다.
치과계 제1의 정론지로서 자부심을 갖고 정진하기 바란다.
이원균(26대)
2005.5.1~2008.4.30
회무에 전념하다 10여년만에 본연의 업무인 진료에 매진 중이다. 그동안 못만났던 친구들과 소주도 한잔하는 즐거움도 있다. 인생을 上善若水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움추려 있었던 광고업무를 크게 키우고 활성화시켰다. 치의신보를 신문사 형태로 독립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으나 집행부의 동의를 얻지못해 불발에 그친게 아쉽다.
기관지로서 정책홍보에 치중하면 할수록 회원들로부터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것이 기관지로서의 딜레마다. 이 문제는 집행부의 의지가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치의신보로서도 이에 대한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안민호(27대)
2008.5.1~2011.4.30
공보이사를 마치고 이번 집행부에서 총무이사 겸 사무총장을 겸임하고 있다.
월요일자와 목요일자의 차별화를 시도했고, 광고의 연 단위 장기계약도 시도했다. 신문제작시스템의 변경으로 많은 예산을 절감하기도 했다. 임기말에 세미나리뷰 조작기사 사건, 특히 치의신보에 관한 내용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 어떤 형식으로든 마무리 했어야 했는데 마무리 못한 것이 아쉽다.
기사작성에 있어 기사내용에 대한 정보나 배경에 대해 확인하고 필요하며 해설도 곁들여 독자들이 정확한 정보로 판단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정리: 이윤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