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호 월요 시론] 봄비 오던 날

2012.09.24 00:00:00

월요 시론
박용호 <본지 집필위원>


봄비 오던 날


그날은 아침부터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간암으로 저 세상에 일찍 간 친구의 일주기에 다섯 부부가 묘소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침 TV에서 재기에 힘쓰고 있는 가수 남인수의 ‘봄비’ 노래가 울적한 마음을 흔든다. “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친구 부인들 앞에서 눈물 쏟지는 않아야 할텐데….


친구는 학생 시절 명석하고 치밀했다. 그는 공부 욕심이 많아서 영양제에 각성제까지 한웅큼씩 먹으며 몰두하곤 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기업의 외국 지사장으로 절정가도를 달렸는데, 조석으로 꼼짝 못하고 환자에 묻혀 살았던 나는 해외 출장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그가 부러웠다. 어느 날 느닷없이 그가 대만에서 국제전화를 해왔다. 평소와 달리 힘이 없었다. “용호야, 지금 접대차 또 룸살롱 가는 길인데… 지겨워 죽겠다…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네가 부럽다.” “이게 진료하는 것도 전쟁이다, 전쟁 야~ 회사 돈으로 노는데 얼마나 좋으냐~”했지만 그가 하도 절절 했으므로 난 주로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세월이 흘러 친구는 아들이 치과대학을 가겠다고 컨설팅을 해왔고, 때마침 동년배인 경영학 지망생인 내 아들은 친구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친구 아들은 실습에 필요한 발치치아를 부탁하기도 하고 공보의 하기 전에 우리 치과에서 견습도 하고 지금은 지방 도시에서 개업을 하였다. 우리 아들은 의류 수출회사에 근무 중이다.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고 아침은 거르고 다니는 일상이 안쓰럽다. 그래도 무슨 때가 되면 용돈도 건네고 집사람 옷도 가져 온다. 이 분야에도 공짜는 없다.


봄비가 멈춘 음울한 산소입구에, 철쭉만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친구부인과 아들이 맞아주었다. 부인들끼리 손을 맞잡고 어깨가 들썩인다. 홀로 된 친구 부인의 슬픔이 아직 가녀린 어깨에 내려 앉아 있다. 친구는 전망 좋은 산 중턱에 누워 있다. 누군가 분위기를 반전하려고 “아이고, 왜 이리 수염이 자랐나~” 벌써 일 년 전인가? 인생이 참 빠르구나, 친구는 이미 가고.


산소에서 내려와 식당에 둘러 앉았다. 친구 아들인 닥터 A가  “치의신보에 UD칼럼 쓰신 것 읽고 응원 전화 드릴려고 했는데 바쁘실거 같아 그만 두었어요” “그래? 읽어주어 고맙네. 치과운영은 잘 되나?” 주민들이 그래도 레진충전을 많이 해서 선배와 둘이 꾸려 나간다고 했다. 자연스레 UD이야기를 하길래 과잉진료 스스로 조심하고 고가진료에만 신경 쓰지 말라고 하려다 참았다. 백면서생(白面書生)의 사족이 될 터이고 그 연령 때의 치과의사의 고뇌와 상황이 어떠할지를 훤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UD치과 문제가 막바지에 이르고 법적인 정리 절차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다. R플란트를 비롯, 여러 신생 유사 플란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때문이다. 신세대 치의들이 네트워크를 비난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로망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원장이 없으면 모든 것이 올 스톱되는 개인치과보다 원장이 없어도 회사처럼 잘 돌아가는 UD로망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때는 어느 선배가 자식에게 치과의사를 대물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든 일을 무얼, 자식까지…” 교만한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존경스럽고 대단한 생각이 든다. 자기 일을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 것을 은연중에 자녀가 보고 배운 것이리라. 그러니 닥터A, 아비 세대 닮지 말고 자기 것을 최고로 알고 내 밥상이 최고의 성찬인줄 알게나.


그날 이후 “봄비” 노래에 필감(feel 感)했다. 세 살 배기  외손주가 오면 윷놀이를 하다가 심심하면 윷가락을 두들기며 서로 노래를 하는데 내 차례가 되면 외손주는 ‘뽀삐(봄비)’를 하라고 성화다. 열창을 시작하면 노래하며 인상 쓰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까르륵 뒤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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