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 영원한 청년, 영면에 들다

2016.07.12 10:18:12

이병태 전 치과의사학회장 별세
사람과 사회 사랑한 ‘홍익인간’


“‘장마가 끝나면 오시겠지’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영면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중략) 선생님, 드릴 말씀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제 옆에 앉아계시던 스툴을 그대로 두겠습니다. 선생님, 천당에서 편히 쉬십시오.”

2013년 이한수 대한치과의사학회 초대회장이 별세했을 때, 그는 선배를 위한 추도사를 이렇게 적었다. 장마의 끝을 기다렸던 후배는, 그렇게 3년 뒤 장마의 와중에 홀연히 선배의 뒤를 좇았다. 이병태 전 대한치과의사학회장이 지난 9일 심근경색으로 별세했다. 향년 74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치의학계 안팎의 많은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고인의 후배 김평일 원장은 “박사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좋으신 박사님은 방송인, 문학인, 교육자, 남북교류 등 홍익인간의 삶을 다방면으로 몸소 실행 하셨습니다. 박사님의 홍익인간 정신은 피안에서도 빛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동포 사랑 역사 사랑 깊으셨던 박사님은 먼저 가 계신 선몰 치인과 선열과 함께 평화를 누리시며 큰 사랑을 받으시리라 확신 합니다”라고 추도했다. 

고인의 삶은 ‘기록의 삶’으로 압축된다. 그중에서도 영정 앞에 놓인 ‘이치의학사전’은 그 노력이 응축된 결정체다. 약 40여 년의 세월을 바친 이치의학사전은 치의학을 비롯해 의학, 한의학, 생물, 화학과 관계된 용어를 영어, 한국어, 한자로 표기, 총 2180페이지 16만여 단어를 수록했다. 이학박사인 장남과 치의학박사인 차남, 출판사 대표인 삼남이 모두 팔을 걷고 부친의 ‘대역사’에 동참했다. 

이외에도 이병태 박사는 치과보철기공학(76년), 월간치과연구(77년), 치과의학사전(82년), 치의학역사산책(2001년), 나는 사람이 좋다(2016년) 등 치의학, 치의학사를 아우르는 저술을 했고, 치의신보의 전신이자 치과계 최초의 정보지 ‘치과월보’의 편집국장을 역임, 치과계 공론의 장을 열었다. 대한치과의사학회에 오랫동안 몸 담으며 치과의사학의 뿌리를 내리는 데 진력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은 북녘 동포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다. 1990년부터 연변을 오가며 북측과의 치의학 교류를 모색했고, 연변 제2인민병원 명예원장을 지낸 이력을 바탕으로 북한 금강산온정인민병원에 치과진료소가 개설되는 데 마중물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공적을 인정해 치협은 지난 2014년 이병태 박사를 ‘올해의 치과인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 박사는 당시 수상소감으로 “치과계를 위해 늘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는데, 그걸 알아줘서 감사하다”며 “치과의사는 자신이 전공한 지식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올바른 역사인식과 철학,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삶 속에서 이를 실천할 때 환자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사회와 관계하며 공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고인은 생전 문학계, 방송계, 교육계, 산악계까지 두루 섭렵하며 ‘전인적 인간’으로 뜨겁게 사회와 사람을 사랑했다. 

고인은 생전 기자와 통화를 하면 말미에 늘 “고맙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제 대한민국 치과계는 이 말을 고인에게 돌려줘야 할 것 같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천당에서 편히 쉬십시오”라고.  

추도사==================================

故 이병태 박사님을 추모하며

이병태 박사님께서 마지막으로 최근 출간하신 ‘나는 사람이 좋다’라는 수필집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로 풀이 됩니다. 먼저 제목 그대로 박사님은 사람을 좋아 하신다는 뜻이고, 그리고 두 번째로 박사님은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뜻풀이도 됩니다. 당신을 진솔하신 고백하신 그대로 박사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좋으신 박사님은 역사의식이 대학에서 역사학 강의를 하실 만큼 뚜렷하신 까닭인지 나라정신인 홍익인간의 삶을 다방면으로 몸소 실행 하셨습니다. 동양방송 시절 라디오 교통 인기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에서 방송인의 진면목을 보이셨고, 문학 산악인 모임 ‘한국산서회’에서 두 번이나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또한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신 문인으로 치과의사문인회에서 제2대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역사학을 사랑하셔서 대한치과의사학회장을 역임하시고, 경희치대 치의사학 강의를 오랜 세월 맡으셨습니다. 1980년대 협회사 편찬사업부터, 1995년 출간 서울시치과의사회 회사 편찬 위원장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대북 동포 사랑도 앞장서시니 박사님은 중국 길림성 제2인민병원 구강과에 대한 적극적 지원활동으로 1997년 제2인민병원 명예원장에 위촉 되시도록 진료 지원을 하셨습니다. 남북 화해 분위기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후, 2003년 남북치의학교류협회를 만드시고, 2005년 9월 25일부터 금강산 온정인민병원에 치과를 개소,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진료 봉사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부득이 철수하시게 되는데, 2008년 2월 최종 방문 시까지 총 58차, 1240명의 북한 주민을 무료 진료 봉사를 하셨는데, 온정리 진료는 인기가 좋아 멀리 평양에서 조차 진료를 받으려 환자들이 오기도 했다 합니다.

못 마치신 과업도 있습니다. 특별한 애정을 보이신 치과의학박물관을 위한 평생 수집 소장품을 생각하면 손수 마치시지 못하심에 애절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치과계 역사 기록물이라면 엽서 한 장 놓치지 않고 모으신 유물 소품 하나하나가 박사님의 치과 사랑입니다.

그렇게 좋으신 박사님께서 피안으로 먼저 건너가셨습니다. 박사님의 홍익인간 정신은 피안에서도 빛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동포 사랑, 역사 사랑 깊으셨던 박사님은 먼저 가 계신 선몰 치인과 선열과 함께 평화를 누리시며 큰 사랑을 받으시리라 확신 합니다.

끝으로 추모의 정으로 박사님의 유고를 모셔 봅니다.
박사님께서 애정을 기울이신 여러 유고를 생각하면 그리움이 피어오릅니다.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저서와 주옥같으신 글들

* 치과 전문저서- 치과보철기공학/치과의학사전/북한 구강의학 용어집

* 수필집- 깍두기로 통하는 나/ 중국기행집 <北京, 年邊 그리고 白頭山>/이대로 저대로 제대로/깍두기의설악산 식사당번/나는 사람이 좋다
* 번역서- 마터호른 이야기

박사님의 유고에는 박사님의 온기와 열정 사랑의 여운이 그대로 이 세상에 머물러 우리에게 그리움의 징표가 되었습니다. 피안으로 건너 만남은 또다시 이루어지는 새로운 만남, 그래서 슬퍼 보이지만 죽음도 아름다운 소망이라 믿어집니다. 박사님 머지않아 모두 다시 만날 그 때까지 부디 명경지수의 평화를 누리소서. 

보철과 後學 金平一 謹弔
조영갑 기자 ygmonkey@dailydent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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