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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큘럼

스펙트럼

임용 후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3월 개강과 함께 시작된 새 학기에는 무려 여섯 과목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업무량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학교 측에서도 과목을 일부 줄여도 괜찮다는 배려를 먼저 건네주셨습니다. 그러나 선뜻 줄일 수 있는 과목은 없었습니다. 예방치과를 전공한 전임교원이 부재하던 시기에도 교육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 온 대학의 노력과, 또 강의를 맡아주신 분들의 노고를 생각할 때 교육의 폭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기존에 사용하던 강의 교안을 그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과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습 시수와 전체 수업 시간이 서로 달라 교안을 대폭 수정하거나 새롭게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첫 수업이 단순한 개요 설명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준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막연했던 걱정은 점차 구체적인 고민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어지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한때는 현실과 타협하여 AI 도구의 도움을 받아 교과서 중심의 강의를 구성해보기도 했습니다. 마치 전문 디자이너가 만든 듯한 정돈된 레이아웃에 교과서의 핵심 내용이 구성지게 나열된 자료가 몇 분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를 보며 기술 발전에 감탄하는 한편, 설명하기 어려운 아쉬움도 느껴졌습니다. 예방치학을 전공하고 임상 예방 진료를 수행하는 전임교원이 아니어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강의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상 예방의 관점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내고자 하는 마음에, 교과서에 국한되지 않는 강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강의 자료를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또 다른 고민이 생겼습니다. 작년 2학기에 예방치과 교과목을 처음 접한 본과 2학년, 올해 1학기에 공중구강보건학 중심의 내용으로 제 수업을 처음 듣는 본과 3학년, 그리고 보건의료관계법규 중심의 내용으로 처음 만나는 본과 4학년을 동일한 기준 커리큘럼으로 묶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할 경우, 제가 생각하는 현대 임상 예방치학의 핵심 내용이 특정 학년에서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커리큘럼의 기준을 본과 2학년에 두고, 반드시 전달되어야 할 핵심 내용은 본과 3, 4학년에도 공통으로 포함하되, 각 학년 과목 특성에 맞추어 일부 교과 내용을 축약하는 방식으로 전체 구조를 재정비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본과 3, 4학년의 강의 진도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 보강이 필요해질 수 있고, 이는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체 학년을 아우르는 안정적인 커리큘럼을 완성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임용 초기, 그리고 먼 지역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를 결심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빠르게 이루고자 했습니다. 지역사회와 직장에의 적응, 진료실 정착, 교육과정 확정까지 모두 신속하게 해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보낸 지금 그 목표가 과연 적절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가족의 정착이 충분히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진료실 구성원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대학이 요구하는 수치화된 교육 성과에만 매몰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결국 제가 맡은 교육이라는 역할은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보다 분명하고 설득력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 충실해야겠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