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과대학을 졸업할 때 가졌던 생각은 단순했다.
“이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니 사회에 나가면 꽤 괜찮게 살겠지.”
지금 생각하면 다소 순진한 기대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부모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서울대 가서 치과대학만 졸업하면 인생 편하다” “딴 생각 말고 공부만 해라” 심지어 “예쁜 여자들이 줄 설 거다”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던 시대였다.
당시 이런 말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사법고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하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라는 직업 자체가 희소했고, 그 희소성은 곧 사회적 보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 이름이나 직업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따라오는 시대도 함께 끝났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하게 대우해 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저 사람은 성실하고 공부를 잘했겠구나”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사람은 농담처럼 말한다. “서울대 나오면 연애도 잘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현실은 훨씬 단순하다. 매력은 결국 사람 자체에서 나온다. 잘생겼거나, 유머가 있거나, 경제적 능력이 있거나, 인간적인 매력이 있거나. 대학 간판이 대신해 주는 것은 많지 않다.
많은 후배들이 아직도 이렇게 생각한다. “전문의만 따면 상황이 좋아지겠지.”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의라는 자격은 성공을 보장하는 티켓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전문의가 갖는 장점은 분명 존재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고, 진료 영역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며, 취업에서 약간의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방향을 대신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요즘 전문직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직업 자체의 가치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차별화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의료 인력은 늘어났고, 정보는 빠르게 공유되며, 의료 환경은 점점 경쟁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위치에 머무르는 것이다. 전문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나는 어떤 포지션을 가진 전문가인가. 수술을 잘하는 의사인지, 연구를 하는 의사인지, 교육을 하는 의사인지, 혹은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사람인지.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전문직이라는 이름도 점점 힘을 잃게 된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치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개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의료 지식은 진료실 안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의료 스타트업, 헬스케어 기술, 교육 콘텐츠, 공공 의료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 최근 정부 역시 창업과 혁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의료인이 자신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황을 ‘전문직의 몰락’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전문직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과거에는 간판과 자격증이 어느 정도의 미래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신 자신의 방향을 스스로 설계하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
졸업장은 출발선일 뿐이다. 대학의 이름도, 전문의라는 자격도 결국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를 가지고 어떤 길을 만들어 갈 것인지는 결국 개인의 선택과 실행에 달려 있다.
지금은 전문직이 무너진 시대가 아니라,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실력의 시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