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이륙 전, 승무원은 늘 같은 안내를 반복합니다.
“기내 압력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 옆의 아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이 말이 비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기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치과의사들의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환자의 통증과 불편감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숨을 참아온 것은 아닐까요? 환자를 돕기 위해 정작 본인의 산소마스크는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를 지우고 환자에게만 몰입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이미 실습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가고시 실기 시험장, 프렙 과정 중 인접치를 1mm 건드리는 것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되지만, 치과의사의 허리가 몇 도로 굽었는지, 목이 얼마나 비틀렸는지는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학생 시절 자세를 포기하면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간접 시야(Indirect vision)를 통한 바른 자세는 치과의사가 평생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생존 기술임에도, 눈앞의 결과물을 위해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결국 환자의 치아를 살리는 법을 배우는 대가로, 자신의 척추와 관절을 소모하는 법을 먼저 학습하며 임상가로서의 첫발을 내딛습니다.
졸업 후 마주하는 현실은 더 차갑습니다. 환자 보호와 감염 관리를 위한 규제들은 해마다 촘촘해지지만, 그 높은 기준을 지탱하는 치과의사의 어깨를 받쳐줄 제도적 장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진심을 다해 치료했던 환자로부터 날아온 고소장이나 보건소 민원은 의료인의 소명 의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근관치료 후의 생물학적 한계로 발생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통증조차 의료인의 무능이나 악의로 치부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치과의사는 잠재적 가해자로 내몰립니다.
환자의 권익이 정교하게 제도화되는 동안, 의료인의 권익은 각자도생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환자 보호는 의료인을 소진하는 방식이 아닌, 소신 있게 진료할 수 있는 안전망 위에서만 가능함에도 말입니다.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제도적 한계 속에 환자의 불신까지 더해지는 근관치료의 현실은, 치과의사의 심리적 박탈감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이미 퇴행성 변화가 진행된 치아는 자동차 부품처럼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병들고 노화된 조직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겪는 불편감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경과임에도, 완벽한 무통을 기대하는 환자의 높은 기준 앞에서 치과의사의 정성은 쉽게 부정당합니다.
임상 경험이 쌓일수록 깨닫습니다. 치과의사는 마법사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 안에서 최선의 중재를 하는 임상가일 뿐이라는 것을요. 이러한 진료의 본질적 한계를 환자와 공유하고 이해받는 과정은, 술식 세미나만큼이나 절실한 과제입니다.
환자를 위한 최신 술식과 재료 컨퍼런스에 쏟는 열정의 일부를, 이제는 치과의사인 나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환경을 구축하고, 번아웃을 감지하는 심리적 예민함을 기르며, 무리한 요구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익히는 것. 이 모든 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치과의사가 환자 곁을 더 오래 지키기 위한 지속 가능한 돌봄의 필수 조건입니다.
치과의사인 ‘나’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깊게 숨을 쉴 수 있어야 환자에게도 맑은 공기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치과계의 교육과 제도, 그리고 문화가 이 당연한 진실을 보듬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