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가 개원시장 중심의 치열한 경쟁으로 매몰된 현 상황에서 치의학의 빛나는 순간들을 짚어봄으로써 오늘날의 치과의사들이 사용하는 술식의 원류를 되짚고, 이를 통해 치과의사로서의 뿌리를 재확인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치주과학은 존 리그스(John Riggs)로부터 시작됐으나, 호레이스 웰스(Horace Wells)에 큰 영향을 받았고 1836년 하트퍼드에서 스승과 제자이자 동업자로 치과를 시작했습니다. Horace Wells는 무통발치에 관심이 많았고, 치의학이 학문과 이론을 기반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 치아의 구조(해부학), 잇몸질환의 예방과 치료 등의 연구로 책도 남겼습니다. 그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향을 이어받은 John Riggs가 치은절제술이나 발치가 전부였던 치료에서 치석제거, 구강위생 관리, 약물치료, 올바른 칫솔질교육 등의 치주치료를 시행하면서 치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여 체계적인 치주치료의 선구자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윌리엄 존 영거(William John Younger)가 뜻을 이어받아 치주학 발전에 힘썼고, 데이비드 D. 스미스(David D. Smith)와 레비 C. 테일러(Levi C. Taylor) 등이 구강위생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예방 중심 치과치료로 초기치주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한편 그린 V. 블랙(Greene Vardiman Black)은 치과 보존학의 창시자이지만 치주질환 원인을 국소원인과 전신건강 등으로 나누어 설명함으로써 치주학의 기본이론을 확립했습니다.
한편 윌러비 D. 밀러(Willoughby D. Miller)는 치주질환이 특정 한 가지 세균이 아니라 구강내 여러 세균이 함께 작용해서 발생한다는 이론을 제시해 치주질환의 원인 연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 후에도 아서 메릿(Arthur Merritt), 로빈 B. 아데어(Robin B. Adair) 등이 치주학 발전에 기여했고, 1914년에는 미국 치주학회가 발족했습니다. 1884년에 발표됐던 S. Robicsek의 치은 절제술(Gingivectomy), 1899년에 카를 파르치(Carl Partsch)가 판막을 이용한 수술법을 발표한 후, 1912년에 로버트 노이만(Robert Neumann), 1914년에 치에신스키(A. Cieszyinski), 1916년에 레오나르트 위드만(Leonard Widman), 그리고 1918년 미국 아서 젠틀러(Arthur Zentler)가 Flap Operation 치료의 새로운 방법을 경쟁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한편 치은 소파술(subgingival Curettage)도 1924년부터 콜롬비아대학의 이사도어 허슈펠트(Isador Hirschfeld), 미시간대학의 러셀 번팅(Russell W. Bunting) 등이 치주과 전문교육에 포함시켰고 NYU, 콜롬비아의 죤 맥콜(John McCall,Sr.), 폴 스틸만(Paul Stillman) 등의 활약으로 이어지면서 미국 치주과학의 여명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존 리그스 John M. Riggs(1811-1885)
Riggs는 필라델피아의 Jefferson Medical College 재학중 치과에 관심이 생겨서 1837년 Wells에게 치과도제로 수련, 치과의사가 되었습니다. 1837년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Wells와 함께 개원, 이후 1845년에 치과를 인수하면서 자신이 직접 고안한 스케일러를 사용해 치아의 침착물과 괴사된 골을 제거하고, 몰약 등 약물도포, 치아를 연마하는 술식과 올바른 구강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진료를 25년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그 결과를 Connecticut Vally Dental Society에 발표합니다. 1854년에는 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에서 명예 치과의사 호칭을 받았으며, 1876년에 치주질환의 진행을 4단계로 분류, 발표했고, 치은의 화농성 염증과 치조골흡수 과정을 병리학적으로 설명, 치주치료 전문화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이후 하버드에서 강의하는 등 점차 치주학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으며, 그는 치주과학의 첫 전문의로 불립니다. 이후 치과계에서 치주질환을 “Riggs’ disease(릭스병)”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윌리암 영거 William John Younger(1838-1920)
그의 대학교육 기록은 알려진 바 없으며 도제식으로 치과의사가 됐으리라 추정됩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업 및 진료하면서 1862년 University of Pacific Medicine에서 치의학 강의를 했고 1887년 시카고로 이주했다가 1900년 이후 파리에서 약 20년간 개업 후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Younger의 치주학에서의 업적
1892년 재부착(Reattachment) 개념을 제시했으며 이상적인 치료결과로 치은외벽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보다 치주낭 깊이를 감소시키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97년 스케일링 기구를 스스로 디자인하여 현대 치주기구의 시초가 되었으며 그의 제자 Robert Good에 의해 개선됨으로 현재까지도 Younger-Good Scaler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1902년 최초의 치은이식술(gingival graft)을 시행하여 “치아-치은 재부착(Dento-gingival reattachment)”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미국 치과의사 중 최초로, 최고의 임상과 연구를 병행한 인물로 시대를 앞서간 학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지 브이 블랙 Greene Vardiman Black(1836-1915)
1857년 G. V. Black은 J. C. Speer 문하에서 도제로 치과의사의 길을 시작한 후 University of Iowa에서 강의를 시작, 1890년 시카고에서 본격적으로 교수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치과학은 아직 과학적인 체계를 갖추지는 못한 채 의학의 한 분야에 속해 있었지만 치과학을 독립된 현대 치의학으로 발전시킨 창시자 중 한사람으로 인정되며 또한 교육계로 참여하여 Northwestern University Dental School의 학장을 역임했습니다.「Periosteum and Peridental Membrane」,「Special Dental Pathology」등 다수의 중요한 저서를 발표하여 치주과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윌러비 D. 밀러 Willoughby D. Miller(1853–1907)
1853년 오하이오주, 독일계 이민자가정에서 출생, 독일계 치과의사의 사위가 된 후 치과에 대한 관심으로 1879년 Pennsylvania Dental College에서 치과의사가 되어 장인과 Berlin에서 진료하면서 당시 세균연구로 유명하던 Robert Koch에게 영감을 받아 기초, 세균학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1889년 저서 The Microorganisms of the Human Mouth에서 치주질환은 특정 한 가지 세균이 아니라 구강 내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세균들에 의해 발생한다는 비특이적 치태가설(Non-specific plaque hypothesis)을 제시했습니다. 1892년 Berlin대학 교수로 임명, 1871–1907년 동안 충치, 치주질환 등을 연구, 164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1906년 University of Michigan 치과대학 학장으로 임명됐으나 급성 충수염 발병으로 사망합니다.
Epilogue
초기 치주과학은, 발치나 보철 등 기술적 치과에서 치아유지를 위한 치료로의 변화를 강조한 치의학의 한분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치주수술과 치은보존 치료의 발전, 그리고 치주조직질환의 병인, 세균의 연구 등 다양한 학문적, 임상적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노력한 선학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이 이룬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1. Suppurative Inflammation of the Gums and Absorption of the Gums and Alveolar Processes :John W. Riggs, Dental Cosmos1876
2. History of Periodontology: Fermin Carranza, Gerald Shklar Quintessence P ub Co, Inc 2003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종관 교수
·치주과 전문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명예교수
·대한치주과학회 고문
·전 연세치과대학 병원장
·2010 치협 학술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