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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맛 2: 소문난 육개장

임철중 칼럼

약전골목 초입에 올망졸망 맛집이 몰려있었다. 오전 11시 ‘소문난 육개장’ 앞, 두 여인이 대야를 두고 마주 앉는다. 고부간 수다를 떨어가며 잘 삶아진 양지머리를 결 따라 자디잘게 찢는다. 무심결에 발길 따라 들어가 주문을 하니까, 첫술에 “아, 이건 어머니 손맛(Mom’s Touch)!”,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예로부터 “극한극서에는 원행을 피하고 안방 방사도 삼가라.”(極寒極暑 遠行 房事) 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소중한 몸을 알뜰히 보전하라는 뜻이다. 기공소가 없던 시절에 점심에는 치과직원만 대여섯이니, 부뚜막에는 크고 작은 가마솥 세 개에 국수 삶는 풍로가 따로 있었다. 어머님은 한여름 한겨울 주말에는 보양(補養)식을 빠뜨리지 않으셨다.


직업상 분진(粉塵)을 마시는 치과 식구들에게, 수육에 새우젓을 곁들이거나 고기가 넉넉한 육개장을 끓여 내셨다. 잘게 찢은 양지머리에 대파를 겅중겅중 잘라 함께 육수에 투하, 대파가 살짝 익을 만큼 한 번 더 끓인다. 맛깔 나는 육수에는 질긴 고기를 써야하므로, 잘게 찢어 한 번 더 우려내면, 육향이 그윽해지고 살도 연하다.


고기 맛 돋우는 고사리는 많으면 제 맛만 내세우니까 살짝 데쳐서 두어 꼬집만, 머리 따낸 식감용 콩나물은 넣되, 무는 맛이 묽어진다고 꺼리셨다. 입 안 가득 얼큰하고 감칠맛이 맴도는 어머니 표 육개장을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충남대 재직 중 테니스에 푹 빠졌다. 새벽 월례회는 원동 다리 옆 C-해장국. 손님이 인산인해요 주문은 물어보나마나 갑자 생, 콩나물 해장국이다. 간은 당연히 새우젓 국물로 맞춘다. 개업 후 한동안 뜸하다가 우연히 들렸더니 제 맛이 아니다. 원인은 ‘쌀’이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던 그 쌀이 아니라 푸석한 통일벼다. 좋은 쌀이 반찬 세 몫이라고 홀이 슬슬 썰렁해지더니, 몇 년 새 체인점이 1/3로 줄었다. 소문난 육개장은 풍미 깊은 쌀에 돌솥 밥도 원조였다. 밥뚜껑 열자마자 냉큼 가져가는 식당은 ‘사이비’다. 밥을 푸면 뜨거운 물 붓고 뚜껑 덮어 3분이면, 돌솥 잠열(潛熱)로 물이 끓어오른다. 식사 후 눌은밥이야말로 숭늉과 함께 K-디저트의 끝판 왕이다. 물을 안 붓고 덮어두면 K-디저트 2, 고소한 깡 게(누룽지)가 동그랗게 일어난다. 집에 가져가서 눌은밥을 해먹어도 좋다.


가게 김 사장에게서 배운 노하우다. 결국 K-컬처의 뿌리는 기름진 자포니카 쌀로 지은 ‘밥 심’에서 나온 것 아니던가?

 

“밥 한술 줍쇼.” 소리에 대문을 열면, “밥보다 ‘건건이’좀 주세요.” 한다.


식량이 부족한 대한민국에는 농번기에 남침해온 김일성 덕분에 70년대 초까지 거지(乞人)가 흔했다. 가난해도 인심은 후하니까 밥 깡통은 그럭저럭 채우는데, 찬은 만만치가 않았다. 건건이는 갈타운 맛은 없어도 짠맛에 밥을 넘겨주는 값싼 먹거리 도우미다. 영양학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곡물의 왕 쌀은, 찰지고 기름져 365일 줄창 먹다보면 물리니까, 연료 주입에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다. 빵 먹는 서양 음식에는 영양을 보충할 ‘곁 음식(Side Dish)’이 있으나, 쌀을 먹는 우리는 밥 반에 국말은 밥 찬(飯-饌), 두 한자가 ‘반찬’이 되어 붙어 다닌다(To go with the Rice). 그래서 간장, 된장, 고추장 같은 발효음식은 기본이요, 각종 젓갈에 나물만 200여 종에다가, 국은 물론 국이 없으면 냉수에도 밥을 말아 먹는다. 소문난 육개장의 하이라이트가 반찬이었다. 동치미나 무생채 같은 무침에는 설탕과 맛난이 같은 화장품(?)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전통적인 담백한 맛이 은은하다. 건져낸 양지머리와 질 좋은 어묵 등 반찬만으로 소주 두어 병은 술술 넘어간다. 육개장 한 그릇에 잔치 상을 받는 느낌, 모두가 정성어린 손 맛 덕분이었다.

 

송대관을 찜쪄먹게 닮아 송 사장으로 불리던 주인은, 우렁우렁 저음에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하고 부인은 보기 드문 미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귀티 나는 어머니가 안 보인다. 김 사장이 옆에 와 앉더니, “원장님,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제 힘이 달려서 좀 쉬어야겠어요.” 한다. 그날만은 파탈하고 함께 낮술을 마셨다.


한식은 엄청 손이 많이 가고, 절이고 삭히며 재우고 조물조물 무치는 고비마다 솜씨에 따라 맛이 딴판이니, 끈기 있게 지켜보며 배워야 한다. 수십 년 고부간에 전승된 ‘진짜 육개장 맛’을, 이제 어디서 만나나? 진짜 서운했던 것은 바로 전통과 문화의 단절을 바라보는 허전함이었다.


필자가 임치과의원을 물려받은 80년대 초에 추계 과세표준액(推計 課標)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명도의 승계(承繼)라며 꽤 높은 과표를 얻어맞았다. 몇 년 뒤에는 작은 치과건물에 거액의 상속세 폭탄이 떨어졌다.


모두가 징벌적 과세(Punitive Taxation)였다. 많이 개선됐다고 해도 상속세를 둘러싼 정치계의 논의를 지켜보면 아직 멀었다. K-컬처의 지속에는 문화와 전통의 축적이 절실한데,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Rapport’가 대를 물려 유지되는 것은, 환자에 대한 최선의 선물이요 봉사일진데, 격려나 보조는 못 해 줄 망정... 말없이 2대 3대 가업을 잇고 계신 치과 가족의 앞날을 응원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