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록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 또한 가득하다.”
지금 우리 치과계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혼란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3만여 회원 모두가 크든 작든 그 무게를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편집인으로서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 앉아 펜을 드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씁니다. 독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FOMO(포모, Fear of Missing Out)’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나만 뒤처지거나 소외될 것 같은 불안, 남들은 다 누리는 무언가를 나 혼자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을 뜻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SNS 피드를 넘기다 문득 조여드는 그 감각,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지금 우리 치과계를 흔드는 혼란의 밑바닥에도, 어쩌면 이 포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지는 않은지. 내가 자리를 잃으면 어쩌나, 내가 소외되면 어쩌나, 저쪽이 먼저 치고 나가면 어쩌나 - 그 불안이 쌓이고 쌓여 서로를 향한 날선 대결로 번진 것은 아닐까요.
포모는 개인의 심리 현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도, 집단도 포모에 빠집니다. 그리고 포모에 사로잡힌 집단은 눈앞의 것을 잃지 않으려는 두려움에 매달리다,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맙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역사상 가장 깊은 분열의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그가 두 번째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남긴 말은 지금도 인류의 유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며.”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전쟁 중에, 적을 향해 그 말을 한 것입니다. 승리한 뒤에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너그러운 말을 골랐던 것입니다. 링컨에게는 포모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지키려는 두려움 대신,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선택을 향한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그를 위대하다 기록합니다. 증오가 아니라 화합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소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은 단 한 번의 용서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미리엘 주교는 은촛대를 훔쳐 달아난 장발장을 다시 데려왔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촛대도 드린 것입니다. 잊지 마세요.”
주교에게도 포모가 있었다면 그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손해 볼지 모른다는 불안이 앞섰다면 그 촛대는 결코 내어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움 대신 너그러움을 택했고, 그 한마디가 한 인간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삶을 바꿨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그 장면을 통해 말하고자 했습니다. 용서는 패배가 아니라, 가장 강한 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힘이라고.
진짜 FOMO는 따로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것은 무엇입니까. 환자의 구강 건강을 지키는 것, 회원 한 분 한 분의 진료 환경을 개선하는 것, 치과의사라는 직업이 사회로부터 신뢰받는 것 -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진짜 ‘Missing Out’입니다.
서로를 향한 소모적인 다툼 속에서 정작 환자를 잃고, 사회의 신뢰를 잃고, 치과계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포모입니다.
폭풍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문제는 폭풍이 지난 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입니다. 서로를 향한 원망으로 지쳐 쓰러진 모습인지, 아니면 어려운 시간을 함께 버텨낸 동료로서 다시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인지 - 그것은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치과계의 진짜 힘은 갈등의 서류 속에 있지 않습니다. 매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3만 회원의 손끝에 있습니다.
편집인으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이 혼란이 하루빨리 가라앉고, 우리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 환자 곁으로, 치과계의 미래를 향해 - 돌아갈 수 있기를.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서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잃어버릴 내일입니다.
“폭풍 속에서도 꽃은 핍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듯, 치과계의 내일도 반드시 그러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