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가 최근에 낸 문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컵은? 정답은 월드컵. 2026년 6월 11일부터 7월 19일까지 개최된 제23회 월드컵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가 공동 개최하는 대회였으며, 참가국도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되어 역대 가장 큰 규모로 열렸다. 북중미 월드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도 풍성한 볼거리와 감동을 선사한 역사적인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스페인이 뉴욕 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 연장 승부 끝에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FIFA 월드컵 2026 정상에 올랐다. 말이 잘 통하거나 호흡이 잘 맞을 때 흔히 “티키타카가 된다”고 한다.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의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한 건 2010 남아공 월드컵 무렵이다. 당시 스페인은 상대팀이 공을 만져볼 틈도 없이 짧은 패스를 쉴 새 없이 주고받는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티키타카’ 축구로 우승컵을 들었다.
하지만 4년 뒤 티키타카 축구는 ‘한물간 전술’이 됐다. 독일은 상대 진영 깊숙이 달려들어 압박하는 ‘게겐프레싱(전방 압박)’ 전술을 앞세워 브라질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전방 압박에 막힌 티키타카는 자기 진영에서 의미 없이 공만 돌리는 비효율적 축구가 됐고, 스페인은 조별 리그 탈락이라는 굴욕을 맛보았다.
이번 스페인 우승의 핵심에는 ‘재해석된 티키타카’가 있었다. 과거 점유율에만 집중했던 축구에서 속도와 압박, 전환의 날카로움을 갖춘 형태로 진화했다. 짧고 정교한 패스를 기반으로 하되, 공을 잃는 순간 전방에서 즉각적으로 압박을 가하며 상대의 숨통을 조였다. 그 결과 스페인은 경기의 흐름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까지 장악하는 팀으로 완성됐다. 큰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조직력과 집중력은 이번 대회 스페인의 또 다른 무기였다. 과거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팀은 효율과 결과까지 겸비한 완성형 팀으로 거듭났다.
스페인의 라 푸엔테 감독은 티키타카의 전통에 현대 축구의 게겐프레싱과 빠른 공수 전환 등을 접목하는 ‘융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 기조 아래 유소년 대표팀부터 발을 맞춘 선수들과 함께 성장했다. 이렇게 완성한 ‘뉴 티키타카’로 스페인은 북중미 월드컵에서 강팀을 압도하며 16년 만에 월드컵 트로피를 되찾았다.
북중미 월드컵의 강력한 기억으로 남은 나라 중의 하나는 FIFA의 개도국 지원금을 받은 대서양 섬나라 ‘카보 베르데’이다. 인구 52만명, 1인당 GDP는 약 7000달러인 작은 나라 카보베르데는 객관적 전력상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48개 팀 중 최하위권이라는 대회 전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펜딩 챔피언이자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에 맞서 벌인 카보 베르데의 경기력은 실로 인상적이었다. 90분 승부로 따지면 카보 베르데는 이번 아르헨티나전까지 네 경기를 치르며 단 1패도 내주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도 연장 혈투 끝에 겨우 무너뜨렸다는 점을 떠올리면, 카보 베르데가 이번 대회에서 가장 단단한 팀 중 하나였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통 이런 돌풍을 일으킨 팀들은 실력 차를 메우기 위해 매우 거친 축구를 구사하는 경향이 심하다. 하지만 카보 베르데는 이런 플레이를 펼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싸웠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월드컵에서 깜짝 선방한 나라는 전에도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인구가 가장 적은 본선 진출국(130만명)으로 이름을 날린 중남미 섬나라인 ‘트리니다드토바고’는 16강엔 못 갔지만 강호 스웨덴과 비기는 등 좋은 경기를 펼쳐 팬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고 한때 25위였던 FIFA(국제축구연맹) 순위가 지금은 102위다.
축구의 경제학을 분석한 책 ‘사커노믹스’에 의하면 ‘부패한 트리니다드토바고 축구협회장 잭 워너는 FIFA에서 개발도상국 지원 기금을 받아 호화로운 축구 시설을 지었다. 후일 부지가 워너 자신의 소유였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선 축구 경기조차 별로 열리지 않았다. 더 돈 되는 결혼식이나 공연을 워너가 우선했기 때문이다. 월드컵 직후엔 보너스로 지급할 돈을 협회가 착복해 선수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정치적 수완으로 협회를 장악한 워너는 자신에게 반항했다며 주전급 선수 16명을 국가대표팀에서 영구 제명했다. 다음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대표팀은 최하위로 탈락했다. FIFA까지 나서 재건을 지원했지만 무너진 실력과 신뢰는 아직 회복되지 못한 모습이다.’라고 했다.
많은 학자가 축구 잘하는 나라의 조건을 알아내려 연구를 해 왔다. 논쟁이 있지만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 성적이 대체로 좋다’는 결론이 난 거 같다. 선수와 감독의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한편 무능과 부패를 제거해 대표팀이 최고의 역량을 펼치게 하기엔 독재보다 민주주의가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는 통산 12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손흥민을 비롯한 대표 선수들은 세계적인 강팀들과 경쟁하며 좋은 성적을 목표로 대회에 참가하였다. 2002년 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에 ‘스피드와 체력, 투지로 무장한 압박 축구’라는 지향점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국은 24년간 이를 계승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했다. 한국 축구의 특징은 투지와 압박으로 열심히 뛰는 체력과 스피드였다. 그러나 현 상황은 그렇지 못했고 새로운 전술과 전략을 입히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역대급 졸전을 거듭한 끝에 조별리그서 탈락하며 32강에도 들지 못했다. ‘월드컵 16강만 가면 된다’는 근시적 성과주의 아래 명확한 철학이나 원칙 없는 감독 교체와 선임이 반복됐다. ‘결과만 좋으면 장땡’이라는 생각은 결국 북중미 월드컵에서 참혹한 결과를 맞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우리나라와 실력이 월등하게 차이가 났다, 일본축구협회는 1990년부터 100년 중장기 계획으로 유소년 팀을 육성하였고 이번 월드컵 국가대표팀 26명 중 23명이 해외파로 구성된 결과를 보더라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진구 스포티즌 대표가 쓴 ‘위기의 한국 축구, 암흑기 탈출한 벨기에를 배워라’에서 ‘90년대 말 암흑기를 겪은 벨기에는 즉효약이 아니라 다섯 살 아이의 축구부터 다시 연구했고 그것을 국가 전체의 시스템으로 확장했다. 사람 하나를 바꾸면 다음 경기는 달라질 수 있다. 기본과 시스템을 바꾸면 다음 세대가 달라진다. 위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침체가 깊을수록 더 멀리 봐야 한다. 기본이 흔들리면, 미래도 없다.’라고 했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좋은 지배구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주주와 이사회와 경영진이 사익을 노리지 않고 회사의 일치된 목표를 추구하도록 이해관계를 가져야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우리나라가 축구를 잘 하려면 협회·감독·선수가 ‘작은 나라, 거대한 열정’이라는 모토 아래, 승리라는 일치된 목표를 향해 뛴 카보베르데 대표팀처럼 하면 될 것 같다.
2026년 월드컵이란 축제가 끝나고 초라한 성적표을 받은 우리는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가 있다. 불필요한 규제와 규정을 개선하고 기본적인 훈련 환경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고유한 투지와 열정을 바탕으로 당장 4년 뒤가 아니라 중장기 계획을 세워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며 환호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부러워하면 진다는데 카보베르데가 부럽고 일취월장하는 일본이 그리고 우승국 스페인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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