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와 치과

  • 등록 2020.03.13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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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

정말 일상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처음 환자가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상상도 못하게 정말로 많은 것을 바꾸어 버렸다. 봄을 맞아서 기지개를 피려던 각종 세미나들이 줄줄이 취소되고, 여러 단체에서 봄맞이 행사를 계획했던 것들도 무기한 연기됐다.


교회 목사님이 앞에서 설교를 들어주는 성도가 없는 상태에서 인강 강사님들처럼 설교를 하셔서 집에서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도 많은 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누구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도 두려운 세상이 되어버렸고, 방송에서는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마치 올림픽 메달 숫자를 중계하듯이 하는 것도 이제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매일 아침 출근한 병원 식구들 모두 둥그렇게 둘러서서 아침 조회를 해오던 것이 중단되고,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아이들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대기실이 고요한 것도 벌써 여러 주가 지나가고 있다. 병원 자동문 앞에는 간간이 찾아주시는 환자분들 체온 측정하는 풍경과 서로의 얼굴에 항상 착용되어 있는 마스크도 이제는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데스크에서 그칠 줄 모르고 연달아 울리는 전화는 아무래도 치과진료를 미루어야겠다는 내용이고, 그러다 보니 예약표는 취소된 상황을 알리는 표시가 여기저기 올려져 있는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하긴 나 같아도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병원에 안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어느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불안과 공포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낙담하고 자포자기해서는 절대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확산세가 심각한 대유행(Pandemic)까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 모두에게 달려있다고 생각되고 그것은 평소에 우리가 많이 경험하게 되는 삶의 작은 원리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차량이 많은 사거리에서 갑자기 신호등이 고장나면 4방향에서 오는 차들이 서로 겹쳐서 도저히 그 혼란이 풀어지지 않을 때를 경험했었다. 그리고 치과에서 앞의 환자 진료가 예상외로 길어지고, 당일 응급환자들이 갑자기 들이닥치고, 또 대기 중인 환자분들의 치료 순서가 뒤바뀌는 등의 악재가 겹치면 거의 멘붕 수준의 혼란이 있기도 하다.


그럴 때 ‘잠시 멈춤’이 아주 중요한 해결의 씨앗이 된 때가 많았다. 즉, 교통 혼란은 각 4방향에서의 차들이 자기 차만 먼저 가려고 들이밀지 않고 ‘잠시 멈춤’으로 기다려주고, 누군가가 수신호로 한 대씩, 한 대씩 움직이도록 하면 신기하게도 금방 엉켰던 차들이 풀려서 다시 정상적인 흐름이 된다.


진료실과 대기실에서의 상황도 정신없이 빨리 진료를 끝내려고 무리하기보다는 몇 분 정도의 ‘잠시 멈춤’으로 진료에서 손을 떼고 서로 모여서 단 2~3분 정도 상황에 대해 서로 공유하고 역할분담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 이후의 진료 진행이 매끄러워지고 어느덧 대기실의 아비규환이 사라지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예로부터 아메리칸 인디언은 일부러라도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지며, ‘비전 퀘스트’라는 전통 의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자연에서 영감을 얻을 때까지 단식하며 자신의 미래상을 찾아내는 의식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쭉 돌아보면서 나는 누구이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느껴보며, 능동적으로 미래상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 하는데, 이를 교훈삼아, 한창 진료를 할 시간에 너무나도 한가한 현 상황을 탄식할 것이 아니라 나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류가 함께 힘든 때라는 것을 잊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나와 우리 치과의 현재와 미래를 차분하게 정리해볼 수 있는 ‘잠시 멈춤’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지금, 서로를 멀리 하고 일상을 잠시 멈추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것이 모두 서로를 믿고 서로를 가까이 만나는 시간과 일상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한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굳게 믿으면서.

 

마지막으로, 코로나19는 잠시 찾아온 불청객일 뿐이고, 서로가 믿고 힘을 합쳐서 나아가는 진실한 사람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정말로 전쟁같이 싸우고 있는 방역진과 의료인들의 피땀 어린 노력, 그리고 자신보다 상대방을 먼저 걱정하는 이타주의의 마음이, 지금 잠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 별것 아닌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우리 공동의 면역력이 될 것임을 굳게 믿는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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