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팬이라면 쉽게 믿기 어려운 장면이 펼쳐졌다.
김선욱, 선우예권, 조성진, 임윤찬.
이 네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무대에 섰다.
고 정주영 회장님의 서거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음악회 “이어지는 울림”에서 였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 중 단 한 명의 연주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그런데 네 명이 함께라니. 쉽게 잊지 못할 밤이었다.
공연의 해설을 맡은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도 하셨다. 이 공연은 앞으로 클래식 음악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어쩌면 21세기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될지도 모른다고.
공연의 구성도 흥미로웠다. 처음부터 네 명이 등장하는 대신 한 대의 피아노에서 시작해 두 대, 그리고 마지막에는 네 대의 피아노가 무대를 채우며 점점 더 큰 울림으로 이어졌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연주자들이 하나의 음악으로 모여드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한 번의 예술 작품이나 공연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다.
그날 공연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네 명의 연주자가 만들어낸 소리는 한 대의 피아노로는 결코 만들 수 없는 화음과 웅장함이었다. 그 울림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때로는 백 명의 오케스트라보다도, 그 네 명의 연주가 더 강렬하게 공간을 채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연을 보면서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연주자는 수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는다.
하지만 무대 위에는 단 한 번의 순간만이 남는다.
결국 공연은 그 순간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공연은 어쩌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준비했는가.
그리고 그 준비를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가.
얼마 전 프랑스 공영 라디오 France Culture의 한 방송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스의 미술사이자 작가인 Thomas Schlesser는 예술과 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는 개인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동시에 인간에게 공통된 어떤 것에 도달하게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시인들을 읽다 보면
모두 완전히 다른 목소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인간의 외침을 듣게 됩니다.
시대는 변합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것도 변합니다.
예전에는 막대기를 들었다면
지금은 아이폰을 들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사실 별것 아닌 변화입니다.
인간은 여전히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란 남자든 여자든, 어느 시대 사람이든 상관없이
하나의 동일한 인간적 외침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시는 인간을 이해하는 매우 정확한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예술이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예술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연주자들.
다른 해석과 다른 음악적 언어.
그런데 그들이 같은 무대에 앉아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소리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하나의 울림이 된다.
생각해 보면 이런 점은 우리의 진료와도 닮아 있다.
치과의사는 많은 준비와 경험을 바탕으로 진료를 한다.
하지만 실제 치료는 환자 앞에서 이루어지는 단 한 번의 순간 속에서 완성된다.
그 순간에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그리고 자신의 최선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도 매일 작은 무대 위에 서 있는 셈이다.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이나 공연은 평생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예술의 힘이란, 그 울림 속에서 결국 같은 인간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순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의 말로 전해지는 라틴어 문장이 있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