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성호 이익(李瀷) 선생은 성호사설에서 “유구독서(有求讀書), 즉 구하는 바가 있어 글을 읽는 것은 아무리 읽어도 소득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폐해에 대해 선생은 “읽기를 멈추기만 하면 앞이 캄캄해진다. 마치 소경이 희고 검은 것을 말하면서도 그 희고 검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 말하는 바가 귀로 들어와서 입으로 나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라고 비유했습니다. 시험공부와 같은, 특정한 목적을 통과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나 일부 내용을 선별해서 암기하는 독서 등이 유구독서에 해당합니다. 어쩜 우리는 뭔가 얻기 위한 강박증이 있는 그런 독서를 배워서 지금까지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쓸모없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면 읽은 시간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유구독서의 시간마저도 다른 자극적인 매체에 뺏기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익 선생이 말한 유구독서조차도 사실은 버겁습니다. 존 로크(John Locke)는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들만 공급할 뿐이다. 우리가 읽은 지식을 자신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사색이다.”라고 했습니다. 유구독서 위에 몰입과 깊은 사색이 더해져야 진정한 독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유구독서라도 일단은 해야겠지요. 사색을 할 수 있는 생각의 재료들은 수많은 책에 널려 있습니다. 책으로 가는 우리의 손과 읽는 눈과 사색의 뇌가 게을러진 것뿐입니다.
인문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마지막 말들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의 방식 등에 대한 고찰
『엄마의 마지막 말들』 창비, 2020
유구독서의 마음으로 이런 제목의 책을 집어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호기심과 궁금증, 혹은 뭔가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서 처음 책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이내 깊은 생각에 빠지고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스쳐 지나가듯 흘리셨던 말씀 중에 이런 뜻의 말들이 있었구나 하며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집니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힘에 의존해서 얄팍한 상술로 정해진 제목이 아닙니다. 고전학자인 박희병 서울대 교수가 1년여간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들었던 어머니의 말들과 그에 관한 생각을 모은 것입니다. 저자는 말기 암과 인지저하증으로 투병하는 어머니가 병상에서 발화하는 말을 인문학자이자 아들의 시각에서 해석했습니다.
저자의 어머니 말일 뿐이지만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 말씀들이 섞여 있음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기록이 개인적인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의 방식, 주체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도록 인문학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누구나 마주하게 될 ‘마지막’이라는 시간을 매개로 근원적 사랑과 존엄성, 우리 삶의 존재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저절로 몰입과 깊은 사색에 빠질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기업 리스크 관리 전문가가 전하는 생존 전략
각종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법 공유
『리질리언스9』 청림출판, 2020
코로나19 사태가 바꿔 놓은 지구의 풍경은 1년이 넘도록 아직 어색합니다. 기업이나 병원들 모두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생존법을 찾고 있습니다. 비록 이번엔 코로나바이러스지만, 앞으로는 기술 발전의 가속화, 세계 경제의 상호 연결, 불평등의 심화,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문제 같은 여러 리스크가 우리를 더욱 압박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능성은 작으나 발생할 경우 파급력이 매우 큰 리스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위기를 비즈니스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이것이 바로 리질리언스(회복탄력성)입니다. 위기 감지력을 극대화하고 중요한 기능을 빠르게 회복해 성과로 연결하는 ‘리질리언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기업 리스크 관리 전문가인 저자는 이러한 역량을 점검하고 확보하기 위해 실제로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생존을 위해 어떻게 대응하고 조치를 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9가지 리질리언스 렌즈, 고신뢰 조직의 5가지 특징, 비즈니스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기업 생존의 필수 요소를 찾는 SIPOC 분석,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와 기업 취약점 등 이 책에서 제시한 여러 사항을 점검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어기제와 면역 체계를 수립하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6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가 하루키의 신작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몽환적·감성적 단편들
『일인칭 단수』 문학동네, 2020
일본 애니, 와사비과자,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 제가 잘 끊지 못하는 일본 것들입니다. 6년 만의 신간 소설이라니 그동안 하루키 소설 없이도 잘 견딘 것 같습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습관처럼 읽게 될 정도로 이제는 안 읽고 넘어가면 궁금해서 견디지 못합니다.
이번 작품은 특히 1인칭 주인공 ‘나’의 시점으로 모든 이야기가 미스터리하면서도 몽환적, 감성적 필치로 그려졌습니다. 하루키가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어떤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짧게 스쳐 가는 인연일지라도 글의 전개는 말초적 신경을 하나하나 건드립니다. 야한 이야기도 세속적으로 읽히지 않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도 몽환적으로 보이는 하루키의 소설의 매력을 짧은 단편들로 즐기고 싶다면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