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가치: 피닉스출장기

2022.05.03 16:33:40

시론

오랜만에 장거리 출장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집을 나선다. 인천 내항기가 아직 재개통되지 않아 김포로 먼저 간다. 김해공항에서 김포행으로 오랜만에 짐을 부쳤더니 수하물이 탑재되었다는 알림이 폰으로 온다. 원래부터 있던 서비스인가 싶기도한데 사소하지만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워낙 오랜만에 수하물을 보내면서 국적항공사의 ‘배려’에 고마움까지 든다. 사람도 아닌 프로그램의 ‘배려’에 감동까지 할일인가 싶기도하다. 이륙 전에 잠들고 착륙 ‘쿵’에 눈뜬 오랜만의 비행은 기억이 없다. 김포에서 인천공항까지 공항철도를 타고 큰 케리어를 모셔가는 것도 일이다. 평소엔 그냥그냥 억지스럽게 투덜거리며 구르던 바퀴들이 어찌나 잘도 도는지 정차역마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한다. 김포에서 인천까지 스루보딩이 되었던 것이 코로나로 서비스가 없어지니 그땐 당연하던 것이 고객 ’배려’ 서비스였구나 싶다.

 

인천공항에는 무인화시스템의 급속 증가에 따라 체크인 키오스크와 함께 ‘식당로봇의 사촌’들이 제법 돌아다니고 있다. 내 스타일이 아니라 딱히 말을 걸어보고싶지는 않다. 체크인 키오스크 앞에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권을 스켄하는데 ‘배려’심 그득한 항공사 직원이 ‘시력약한 흰머리’를 재빨리 알아보고 다가와 도움을 주신다. 나도 다 알지만... 많은 분들이 접촉하였을 스크린을 대신 눌러주니 고마울 뿐이다. 역시 로봇보다는 사람!! 탑승권을 뽑아들고 빽드롭 수속을 위해 비어있는 빈줄을 샤샤삭 미끄러지듯 걸어 창구 직원의 미소와 인사를 받는다. 교육훈련의 결과이겠지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분들이 비교해볼만한 고객 ‘배려’이다. 가방은 하나 뿐이냐며 피닉스까지 가느냐 확인하고, 미국에서 요구하는 여행자 서약서를 은행직원이 알려주는 것처럼 서명할 곳만 딱 찝어 알려주니, 안경너머 째려 읽어야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좋다. 오늘 참 오랜만의 ‘배려’와 친절이 출장을 여행스럽게 만들어준다.

 

비자는 ESTA를 했는지 확인하고 백신증명을 보여달라하신다. IT강국의 위엄으로 전자정부에서 무료발급받은 백신접종 증명서와 학교옆 의원에서 3만원 내고 비보험(목이 좀 칼칼합니다 한마디면 보험적용 된다던데 차마.... 보험재정을 ‘배려’했다)으로 검사발급한 신속항원검사 음성 결과지를 내밀었다. 나 좀 배운 사람인데 라고 말은 못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여기 다 있어요) 눈빛으로 말하며, 두장 종이를 공손히 내밀었다. 당연히 아무일이 없어야하는데 직원의 고개가 갸우뚱하며, 검사 언제 받은 건지 확인한다. 48시간 내라고 해서 그제 검사했습니다 했더니, 아...미국은 하루 전에 하셔야는데요...12월부터 그랬습니다...라고한다. 아뿔사...탑승안내 메일에 적힌 내용을 제대로 못본 것인지 대충 흘려본 것인지... ‘배려’심 충만해보이는 그녀에게 살려달라는 눈빛으로 도움을 청했다. 지하1층에 검사소가 있는데 탑승까지 두시간 남았으니 빨리 한번 가서 확인해보라고 알려준다. 그래 검사비가 이중지출이 되어도 한시간 내에 하면되니 어쩌겠는가 내 잘못인걸. 그래도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하다. 항공사 안내문에 복잡하고 긴 글보다는 개조식으로 하루전 검사!라고 눈에 띄게 볼드로 밑줄 쫙 적어 ‘배려’하여 보내주지... 검사한 병원에서는 3만원이지만 출국용이면 어느나라인지 요구되는 검사일이 언제인지 알아서 가이드를 해주는 ‘배려’는 왜 없었나 싶다.... 그러나 누굴 탓하리.

 

아침에 출국장으로 항하는 길에 검사소를 보았던지라 씩씩하게 내려간다. 줄도 거의 없고 바로 검사하면 금방 결과가 나올테니 큰 걱정은 없다. 이래저래 자초지종 지금(당연히) 빨리 되는지 물었다. 아뿔사! 오전검사는 끝이고 오후 검사는 1시부터이며 예약자 우선이라 한시반은 되어야 검사가 이루어지고 결과는 그로부터 한시간 더 뒤라고 한다. 제가 두시반 비행기라 점심시간에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공손히 물으니 눈빛으로 (그건 선생님 사정이시고요) 2초 이야기하고, ‘빨리 다음 비행기 일정부터 알아보시고 한시 전에 와서 줄 서서 기다리시도록 하세요’라고...우리병원 인턴선생님처럼 느껴지는 분인데, 키오스크처럼 또!박!또!박! 말한다. 상처....

 

다시 출국장 카운터... 아까 그 ‘배려’심 넘쳐보이는 직원을 다시 찾아가서 이래저래 이러저러 못하는 상황이라 전했더니, (공항철도를 다시 타고 가야하지만)1터미널 검사병원에도 물어봐주고, 심지어 공항 외부 가까운 민간병원까지 알아봐준다. 상처는 이미 다 낫고있다.... 이쯤되면, 항공사 직원은 배려의 천사! 그러나, 결과는 없다. 1터미널도 비슷한 상황이고 외부병원은 일요일 휴진이다. 아 오늘 일요일이구나.... 내가 왜 빨간날 출장간다고 이러고 있는걸까...

 

안쓰러운 눈빛으로 다음 가능 비행기 알아봐드릴까요 묻는다. 이미 지친 마음으로 처분을 따라야하는 분위기다. 다행히 저녁 비행기가 있고 좌석이 한개 남아 있다고 한다. 딱 한 좌석. 이건 뭐 갈 사람은 가게 된다는 건가 싶다. 하긴 도착이 낮에서 밤으로 바뀔뿐 특별히 일정에 차질이 없다. LA 피닉스 연결편까지 다시 예약을 하고 검사소가 열리기까지 도넛 한조각, 뜨거운 커피 한잔과 함께 ‘찹찹한’ 여유를 가져본다. 뜨거운 커피가 식어가며 쓴맛이 강해질 때, 도넛의 단맛 ‘배려’가 더 깊어진다.

 

1시 검사소 오픈 시간 전에 갔는데도 이미 줄이 제법 길다. 비예약자도 상당히 많아 외롭지는 않다. 몇몇은 내일 출국인데 오늘 검사를 오셨다. 배우신 분들...? 꼼꼼하게 잘 알아보신 부러운 분들이다. 두명 뒤에 선 외국인은 두시간 뒤 탑승이라며 시간 내 검사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걱정스런 상황을 직원에게 말한다. 영어가 잘 들리니 미국가서 밥은 먹을 수 있겠다. 이분 걱정이 이해가 되는 순간, 아까와는 다른 직원이 뒷사람과 나의 앞사람까지 양해를 구하는 한국형 ‘배려’를 구한다. 싫다는 말을 못하는건 당연한데, 그 외국인은 의국장포스 물씬 나는 그녀에게만 감사 멘션을 남기고 너댓칸 승진하신다. 이왕 늦어진 일정 5분정도는 충분히 ‘배려’할 만하다.

 

내 순서가되어 기초조사를 하고 수납 창구로 향했다. 그런데 7만원! 눈뜨고 코베이는 곳은 서울인데 인천공항도 아, 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주소지가 서울인가…)도 대단하다. 비행기표 변경수수료에 수직상승한 유류할증료에 더해 코로나 검사비까지 내 잔고상황은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 유리창너머 ‘배려’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파견 의사샘님 2초, 미국가시나요? 네. 옆창구에서 검사하세요. 네. 로 끝나고 2미터 옆 창구에서 코를 찔렀다. 7만원 짜리라 그런지 깊이도 찌른다. 지금껏 찔러본 네 번중 가장 깊다. 한국인이 오른손잡이가 많은 것이 이유인지 늘 왼쪽만 찔리고 오른쪽 콧구멍은 늘 ‘배려’받는 기분이다. 이제 결과 기다림만 남았으니, 잠시 학생들의 임상실습 관련 질문에 답을 한다. 분신과도 같은 컴퓨터와 데이터 테더링은 산소처럼 필수이다. 80명 학생들이 외래에서 보고 생각하는건 어찌 그리 다양한지, 240개 질문은 240개 리엔도 못지않게 다양하다. 잘못 가르친 자의 AS로 ‘배려’심 충만하게 두 개 질문의 답 쓰고 있으니 결과 안내 문자가 온다. 양성이면 못갈텐데 당연히 음성이다. 다시 체킨 카운터로 가서 변경예약편을 발권한다. ‘배려’심 많은 직원이 비상구 좌석이 좀 편할거라며 승무원 도와주라하신다. 하나 남았다더니 좌석 지정이 안되었었나 보다(짧은 다리지만 뻗을 수 있는 것도 혜택이다). 소시적 보이스카웃 출신이라 자신있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기에 져스트 “예(스)!”.

 

이제 큰 가방도 내 손길을 떠나 벨트 위로 몸을 뉘었는데, 나는 어디 쉴 곳이 마땅치 않다. 라운지에서 오전 내내 후닥거린 몸과 마음을 위스키 한잔으로 위로해본다. 셀프 ‘배려’. 엘에이에서 무사 입국심사를 하고 피닉스까지 연결편을 타고 학회장 근처의 숙소까지는 다시 24시간이 예상된다. 환자 ‘배려’, 일차진료의사의 ‘배려(변호)’와 함께하는 일상의 ‘배려’ 리엔도만큼 앞으로 24시간동안 또 다른 많은 ‘배려’가 나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해본다. 2년의 판데믹동안 감염 걱정을 한 것은 막연한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오늘 출국에 이어 주말의 귀국편 탑승에 앞선 PCR검사(이틀전 확실하다!)는 귀국 다음날 만날 환자, 학생들을 위해 꼭 음성이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주변인들의 확진에도 잘 넘어갔던 것처럼 피닉스에서 일주일동안 불사조가 되어 이겨내야 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현철 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한진규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