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의 인류사

2022.06.08 13:50:02

배광식 칼럼

1960-70년대쯤 ‘오리진’이라는 번역서를 읽었다. 영장류로서의 인류의 진화과정을 다루고 마지막 10장에서 향후 크고 작은 전쟁을 불식시키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 희망 섞인 의문부호의 전망으로 끝을 맺은 책이었다. 5-60년 전의 일이라 저자와 역자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감명 깊게 두-세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최근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의 ‘사피엔스(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를 읽으며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오리진’에 대해 아마존 북도 검색해보고, 각종 중고서적 사이트도 검색해보았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한글번역서에 보낸 서문 ‘한국의 독자들에게’에서, 40억 년 전 출현한 생명이 유기체라는 한계에 묶여 자연선택의 법칙을 따르며 진화해왔지만, 이제 인간이,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유기적 생명의 시대를 과학을 통해 지적설계에 의해 빚어진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대체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과학이 우리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 과정 중의 수많은 변화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것이었지, 인간자체의 변화는 아니었는데, 이제 유전공학, 나노기술, 뇌기계 인터페이스에 의해 우리 몸과 마음도 바뀌게 되고, 몸과 마음이 21세기 경제의 주요 생산물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죽음의 극복을 종교에 의존하던 것에서 공학자들이 기술적 혁신으로 그 해결책을 넘겨받는다. 이는 기회이자 위기이며, 이에 대해 비관과 낙관을 떠나, 현실임을 직시하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는 인간강화(human enhancement)라는 문제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독자가 그의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통해 생명의 미래에 대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직업시장에서 컴퓨터가 사람을 대체하고, 대다수의 인간이 경제적 쓸모가 없어지고, 바이오기술 혁신으로 인간의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지고, 빈부 격차가 생물학적 격차로 이어지는 현상을 직시하고 전인류적인 입장에서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으면서도 세계 제일의 자살율을 보이는 한국은, 경제수준이 행복도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기술의 발전을 이용해 무엇을 할 것인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약 140억 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원자, 분자 및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고 부른다.

 

약 40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이는 ‘사피엔스’의 서두로, 140억년의 우주역사를 물리기, 화학기, 생물기, 문화시대, 역사시대로 분류한 것이다. 역사시대는 다시 세 개의 혁명을 기점으로 구분한다. 약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 약 500년 전 발생한 과학혁명, 이들 세 혁명이 인간과 이웃 생명체에게 끼친 영향을 살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Homo neanderthalensis, 유라시아 서부, 약 3만년전 소멸),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아시아 동쪽, 약14만 년 전 소멸), 호모 솔로엔시스(Homo soloensis, 인도네시아 자바섬, 약 5만 년 전 소멸),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약 12,000년전 소멸), 호모 데니소반스(Homo denisovans, 약 4만 년 전 소멸) 등 사람속(Home genus) 들 중 현재 살아남은 사람속은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하다. 사람족의 침팬지속의 침팬지와 보노보는 인류의 사촌, 고릴라족은 육촌, 오랑우탄은 팔촌쯤 될 것 같다.

유발 하라리는, 타 사람속의 멸종이 호모 사피엔스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추측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언제 어디서 처음 진화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약 15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피엔스가 살고 있었다는데 대부분의 과학자가 동의한다. 그들은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전 선조들에 비해 치아와 턱이 작았고 뇌의 크기는 이미 현대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약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사피엔스가 아라비아 반도로 진출하고, 유라시아 전체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이때 유라시아에 이미 존재했던 다른 사람속의 종들이 사라지게 된 이유로 교배이론과 교체이론이 있는데 교체이론이 우세한 편이다. 현재는 중동과 유럽 거주 인구집단이 지닌 인간 고유 DNA 중 1~4%가 네안데르탈인의 DNA로 밝혀짐에 따라 드물게 종간 교배도 일어났음이 증명된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사람속으로 살아남은 이유로는 언어의 발달을 꼽는다.

 

녹색 원숭이는 ‘조심해! 사자야!’ 정도의 언어소통이 가능한 반면, 현대 여성은 ‘오늘 아침 강이 굽어지는 곳 부근에서 한 무리의 들소를 쫓는 사자 한 마리를 보았어.’라고 말하고, 정확한 위치와 그곳까지 가는 여러 갈래 길들까지 묘사할 수 있다. 이 정보를 공유하고 그녀의 무리는 강에 접근해서 사자를 쫓아버리고 들소를 사냥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정보전달능력이 있다. 전설, 신화, 신, 종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라는 허구를 말할 수 있고 이를 집단적으로 믿을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유대와 협업이 가능해진다.

 

수렵채집인의 DNA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농업혁명은 쉬지 못하고 평생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단점과 가축 및 대단위 붙박이 집단거주로 인한 많은 전염병을 가져왔다는 시각도 깊이 음미할 만하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광식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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