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의미

2022.07.26 14:55:22

시론

얼마 전 개원식을 치뤘다. 쑥스러워서 안 하려고 했으나 친한 형님의 조언, 궁금해 하는 지인들, 그리고 내 인생에서 딱 한 번의 이전 개원식일거 같아서 나는 생각을 바꿨다. 14년 만에 병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자그마한 건물을 하나 지었기 때문이다. 험난한 과정이었다. 많은 분들의 축하로 그 동안의 고생이 치유되었다. 살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할 때가 한 번쯤은 있을텐데, 나는 이번이 그랬다.

 

5년 전쯤 릴레이수필에 글을 하나 썼었는데, 동기부여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즈음에 대학원도 시작하고, 땅도 샀던 거 같다. 뭔가 정체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그 때 했나 보다. 그 때 세웠던 목표를 이뤘으니 어떻게 하면 잘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 전직 CEO의 책이었다.

 

그는 아마존 창업자, 마이크로소프트 CEO, 랄프로렌 회장, 존슨앤존슨 회장, 나이키 사장, IBM CEO 등 세계 유수 기업의 총수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기업가이기도 하다. 미국의 베스트 바이(Best Buy)라는 회사의 전직 CEO “위베르 졸리”이다. 베스트 바이는 한국으로 치면 롯데 하이마트와 비슷한 업체다. 생활가전에서부터 스마트폰까지 모든 전자기기를 취급하는 미국 최대 전자제품 판매 체인이다. 미국인 70%가 베스트 바이 매장에서 10마일 안에 살고 있다고 할 정도로 미국인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베스트 바이는 미국의 소매시장을 석권한 ‘유통 공룡’ 아마존의 공세를 버틴 몇 안 되는 업체 중 한 곳이다.

 

경쟁 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지만, 베스트 바이는 오히려 매출과 이익을 동시에 높이며 업계 1위를 굳혔다. 망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베스트 바이의 성장세는 미국 유통 업계에서도 특이한 사건이었다. 아마존이 책, 의류, 전자제품, 가정용품 등 모든 소매시장을 싹쓸이 한 시대에, 베스트 바이는 어떻게 혼자 살아남았을까.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오는 자서전이었다.

 

나는 뭔가 거창한 영업비밀이 들어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책 페이지를 넘겨갔다. 그런데 거창한 것은 없었다. 너무 단순하게도 그의 결론은 “사람”이었다. 위베르 졸리는 기업이 잘 돌아간다면 그 공로는 일선 직원들에게 돌려야 하고,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면 그 책임은 최고경영진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경영 철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이다. 그는 일선 직원들에게도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경영지표보다는 모든 것의 중심과 우선순위로 사람을 놓았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했고, 완벽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인간적인 리더를 추구하며 가슴을 활짝 열고 때로는 자신의 약함도 드러냈다. 약함이야말로 사회적 관계의 핵심이라고 어느 심리학자는 말했는데, 그 바탕에는 진정성이 깔려 있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의 목표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필요할 때만 전면에 나타나고, 그 외에는 뒤에서 뒷받침해주는 리더가 되고자 했다. 이렇게 경영해도 되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의 리더십을 통해 직원들의 휴먼 매직(human magic)이 발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베스트 바이는 아마존에 집어 삼켜지지 않고, 오히려 파트너가 되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추천사에서 “위베르 졸리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다 쓰러져 가던 베스트 바이가 기업 회생에 성공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업적은 전 세계 경영대학원에서 가르쳐야 하고, 대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경련과 같은 미국에는 Business Roundtable(BR)이라는 대기업 협의체가 있다. BR에 가입한 기업들은 연간 고용 직원이 2,000만명 이상이고, 연간 80억 달러 이상 기부하며, 매년 주주들에게 3600억 달러 이상의 배당금을 지급한다. 미국 경제를 이끄는 기업들이다. 1997년에 BR은 ‘기업은 주로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지만, 2019년에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직원에게 투자하며,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협력업체를 상대하고 회사가 속한 지역사회를 지원한다. 그리고 기업과 관련된 모든 이해 관계자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내용에 181명의 최고경영자들이 서명하였다. 이해 관계자에는 주주, 고객, 협력업체,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40년 이상 연속 흑자를 낸 기업은 전체 상장 기업 중 약 1.5% 정도라고 한다. 60년 이상으로 좁히면 대여섯 군데 정도라고 한다. 한 기업이 탄생해서 지속 가능할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기업이 지속 가능한 성공을 추구하려면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의 목적에 대한 BR의 개념 수정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한편으로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 세계적인 유행병이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나 회사에 무관심하다고 한다. 일은 그들에게 활력을 주지 못하며,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일에 최선의 노력, 최선의 에너지, 최선의 관심, 최선의 창의력을 쏟지 못한다. 미국 ADP 연구소에서 전 세계 19개국 1만 9,000명 이상의 직원을 상대로 설문 조사해 보았더니 고작 16%만이 일에 ‘전념하고’있다는 걸 알아냈다. 10명 중 8명 이상이 그저 직장에 얼굴만 디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부분에서 바로 리더의 역량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위베르 졸리가 탁월했던 것이 바로 동기부여였다.

 

그는 “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일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에 대하여 끊임없이 성찰하였고, 직원들과 인간적으로 교감하였다. 그는 실제로 이혼도 했지만, 일을 잃는 것은 이혼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사람은 대부분 성취감과 행복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데, 바로 일이 그런 의미를 찾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은 사람에게 경제적 재정적 안정 뿐만 아니라 자존감에도 영향을 준다. 일은 사람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것이다.

 

중세의 두 석공 이야기가 있다. 두 석공은 같은 일을 했는데, 누가 일에 대해 물으면 첫 번째 석공은 “안 보여요? 지금 돌을 자르고 있잖아요.”라고 답했다. 반면 두 번째 석공은 “지금 성당을 짓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흔한 이야기이지만 어디에 더 의미를 두고,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이제 벌여놓은 일도 있으니 다시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것도 즐겁게 하려고 한다. 나는 건물 시공사 사장님에게 이제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 형님은 갑자기 밤에 나한테 전화한다. 그 형님 집은 우리 치과가 있는 동네이다. 산책 겸 운동하면서 동네를 매일 두 바퀴씩 도는데, 돌다 보니 치과에 불이 켜져 있다면서 자기는 우리 치과 집사라고 한다. 감사할 따름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재성 믿음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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