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지금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의 집중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집중력이 약해진 것도 있지만 환경의 변화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여름방학이나 휴가 때면 습관적으로 소설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 집중해서 두꺼운 소설책을 읽고 나면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했고, 주인공의 삶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경험한 듯한 생생함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책을 읽을 때면 강아지 짖는 소리 말고는 크게 거슬리는 것이 없었고 책을 읽고 있는 저를 방해하려는 것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 습관적으로 읽었던 소설책보다는 밀린 드라마를 봐야 합니다. 남들이 다 보는 드라마 시리즈를 보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잘 맞춰 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죄와 벌, 유리알 유희, 안나 카레니나, 악령, 제인 에어 등을 읽었을 때와 오징어 게임, 더글로리, 재벌집 막내아들, DP 등을 봤을 때를 비교한다면 집중력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전자는 집중력을 요하고 생각의 끈을 놓칠 수 없지만, 후자는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쉽게 따라갈 수 있고 생각에 빠지기 무섭게 내용이 전개되어 결말에 치닫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책을 읽고 나면 그 여운이 오래가고 생각이 자꾸 나지만 드라마는 내용도 잘 생각이 안 나고 특별했던 장면 몇 개만 생각납니다.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느긋하게 생각할 시간 자체를 그 어느 매체에서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용한 방에서 책을 읽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 나의 환경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책
집중력 문제 증가를 비만율 증가로 비유 설명
『도둑맞은 집중력』 어크로스, 2023
집중력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책에 잘 집중하지 못해서 읽는데 꽤나 시간이 걸린 책입니다. 집중을 하지 못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나 주변환경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 유행병’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집중력을 빼앗아가는 도둑들을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들’과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것들’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멀티태스킹,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과각성 상태, 테크 기업의 전방위적인 감시와 조작은 너무 많아서 문제인 것들이고, 수면 시간과 소설 읽기 경험, 몰입의 체험, 영양가 있는 음식은 너무 적어서 문제인 것들이란 식입니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집중력 문제의 증가를 비만율의 증가로 비유해 설명합니다. 50년 전 서구 세계에서 극히 드물었던 비만은 식품 공급 체계가 정크푸드로 대체되며 신체의 변화로 이어지고 생활 방식의 변화가 신체의 변화를 낳아 비만이 더 이상 의학적 유행병이 아니라 사회적 유행병이 되었듯, 집중력 문제도 이와 유사한 형태라고 말합니다.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하고, 주 4일제를 도입해야 하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집중력을 가지고 이 말을 이해하려고 해도 쉽지는 않습니다. 너무나 많이 집중력을 도둑맞은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안타깝고 나의 환경을 돌아보게 되는 책입니다.
AI 오류 발견할 수 있는 ‘눈’은 아직 인간에게 달려 있어
의료 분야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서사의학’도 소개 눈길
『1%를 보는 눈』 추수밭, 2023
챗GPT가 우리 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막힘없이 질문에 대해 단순한 지식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서 마치 논리적인 인간과 이야기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데이터와 숫자로 판별되는 세상에 살고 있고, 어떤 분야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자리는 갈수록 줄어만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챗GPT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습득한 AI는 이를 고칠 정보를 다시 학습하지 않는 이상 고쳐지지 않습니다. 이런 오류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은 아직은 오직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 책은 엔터테인먼트부터 의학까지 지극히 일상적인 영역에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얼마나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밝힙니다. 그리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끌어내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말하며 저자가 직접 인터뷰하고 연구했던 무수한 전문가들의 창의적 발견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마지막 의료에 대한 파트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서사의학’에 대해 소개하며, 질병의 정복이라는 ‘확실성’에 기댄 의학 패러다임을 벗어나 환자와 의사 간의 불완전하지만 친밀한 관계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앞으로도 세상의 99%는 여전히 기계의 몫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서 ‘1%의 기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소설가 베르베르의 삶, 글쓰기 인생 담긴 자전적 에세이
위기 속에서도 이야기꾼의 길 포기하지 않는 삶 조명
『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 열린책들, 2023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국 작가에 늘 빠지지 않는 성실한 천재 베르나르 베르베르. 이 책은 그의 삶과 글쓰기의 인생이 담긴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스물두 장의 타로 카드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각 챕터의 문을 열어 다섯 살 무렵부터 오늘날까지의 이야기를 풀어 갑니다. 최근 읽었던 책 중에서는 단연 집중력을 발휘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작가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책을 다수 번역한 전미연 전문번역가는 이 책을 번역한 후에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오롯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꺾일 법한 위기들 속에서도 이야기꾼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 베르베르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인 인간 베르베르에게 애정과 더불어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고백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은 이 책을 다 읽고 덮게 될 때였습니다. 그만큼 소설책에서 느끼지 못했던 인간 베르베르를 이 책에서는 더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