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선 횡단보도
깜빡깜빡 푸른 신호등/ 열 발짝만 뛸까?//
19 18 17 16 ...//
그래/ 다음 신호에 건너지.//
현찰
주머니 속에 바스락/ 만 원짜리 서너 장.//
플래티넘 카드/ 하나도 안 부럽다.//
재래시장
구겨지고 귀 말린/ 퇴계 영정 만나는 날.//
달포 만에 다시 보는/ 울 엄마 표 오이소박이.//
손가락만 한 세 토막에/ 일금 삼천 원.//
거스름돈이 더 민망한/ 이 동네 짱은 퇴계 이황.//
맥도날드 쌍무지개
노랑 쌍무지개 앞에/ 우두커니 섰다가//
모퉁이 돌아 집어든/ 까망 풀빵 봉다리.//
달콤 짭짤 혀에 감치는/ 육즙 맛 뉘 싫으랴?//
한 수 삐끗하면 마냥 헤매는/ 터치스크린에 쫄아 그러지.//
늘근 아내
어제 찾던 새우젓이 왜 예 있어?/ - 미안해, 여보.//
참, 고춧가루 무치려고 내가 옮겼지/ - 응, 그래?//
아무튼 당신, 냉장고 정리 잘 해/ - 알았다니까.//
전우(戰友): 詩作 노트
아뿔사, 팔십 줄에 들어서니/ 몸은 굼뜨고 맘은 헤매어//
눈 바쁘게 도는 세상/ 따라가기 벅차다.//
종 주먹을 들이대며 따지다가도/ 여보- , 한마디에 배시시 쪼개는//
마누라는 미더운 평생의 전우/ 팽팽하던 처녀 때보다 늙어 더 곱다.//
눈을 뜨니 말문이 막힌다. 호흡기가 숨통을 점령하고 있으니... 갑갑증을 읽은 간호사가, A4용지 너 댓 장을 글 판에 끼워준다. 한밤중에 3남매 내외가 응급실에 다녀갔다는데, 119 구급차에 실리던 기억뿐. 하루가 지나 깨어나니, 머리에 벼라 별 잡생각이 춤추는데, 대한노인회와 한국시인협회가 주최한 짧은 시 공모전이 퍼뜩 떠오른다. 간호사와 필담을 주고받는 틈새로, “한 줄도 길다!”는 명언을 되새기며 중환자실 9일간 여섯 편을 간추려, 퇴원 즉시 E 메일로 보낸 것이 마감 날 3월 14일, “여드니의 옹알이”다. 60에서 98세까지 5,800명이 응시, 12편이 당선되었다는데, 결과는 보기 좋게 낙방. 당선작을 읽어보니, 역시 고개가 끄덕여지고, 시(詩)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써야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위트와 유머가 우선인 ‘짧은 장르’의 시라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백세시대라지만 여든 살 고비는 녹록치 않아, 하고 싶은 말이 속으로 쌓인다. 빠르기와 보폭이 줄어드니 횡단보도는 시간을 재가며 ‘기획 횡단’하고, 카드보다 지폐가 마트보다 재래시장이 만만하며, 키오스크 터치스크린을 요리저리 피해 다닌다. 그런 심경을 꽤나 잘 그려냈는데...
지난 7월 2일 치문회가 주최한 ‘글쓰기 특강’은, 단국대 오민석 교수의 “현대문학이론의 길잡이”. 문학이론(Literary Theory)이란 무엇인가? 로부터 페미니즘까지 총 10개 장(章) 텍스트에서, 이날의 주제는 제4장 구조주의(Structuralism). 문학이론 백여 년의 흐름을 집약해 놓은 내용은 꽤나 난해했지만 많은 깨우침을 얻었다.
‘비평’을 광합성(Creativity) 없는 겨우살이처럼 ‘문학’의 더부살이로만 여겼던 막연한 생각이, 맥없이 백기를 드는 시간이었다. 문학이론은 비평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노력인 신비평(New Critics)에서 시작되었고, 작가 경력이나 시대배경을 깡그리 걷어낸 뒤 작품만 가지고 내재적(intrinsic) 비평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은, 세기말 고골 도스토엡스키 톨스토이 등 리얼리즘의 거대 서사에 억눌렸던 시(詩)문학 부활의 바람을 탔고, 이것이 러시아 형식주의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새롭고 낯설게 해주는 인위적 기술의 총계가 바로 문학이기에, 예술은 곧 기법 그 자체라는 결론도 과몰입은 아닌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함께 등장한 상징주의 시 운동과 시는 신비(mystery)의 수호자라는 화두가, 필자 ‘개인적인 의구심’의 근거다. 길고 난해한 전사(前史) 끝에 ‘구조주의’에 도착한다. 구조란 복잡한 개별적인 현상을 배후에서 생산-조정하는 소수의 추상적 규칙 혹은 체계(system)이며,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일어나지 않은 현상이 예견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 바탕에는 스위스 소쉬르(Saussure)의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가 있고, 계기는 러시아 프로프(Propp)의 “민담(民譚)의 형태론”으로서, 연구 대상이 시(詩)에서 서사(敍事)로 다시 넘어왔다. 문학이론의 현재진행형으로 다원적인 학문분야(Multi-disciplinary)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구조주의 또한, 텍스트가 무엇(what)을 의미하는가 보다 의미가 생산되는 방식(how)의 분석에 주력함으로써, 문학이론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일관된 인식이 읽혀진다. 시적 언어와 서사순서 바꾸기, 낯설게 하기 등 “글을 문학(예술)으로 만드는 장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찾아야 한다는 변치 않는 공리(公理)다.
세계 글쟁이들의 모임인 국제 PEN 클럽 한국본부 창립총회(1954. 10. 23)가 지금은 사라진 소공동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강당에서 열렸다는 기록에서, 치과의사문인회(齒文會)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협회 회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