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아프다

  • 등록 2025.03.05 15:56:32
크게보기

릴레이 수필 제2645번째

내가 몸이 아프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의사도 아파요?”라고 묻는다. 그럼 나는 “의사는 어떤지 몰라도 치과의사는 가끔 아플 때도 있어요”라고 답을 한다.

 

의사도 아프다. 그렇지만 아프다고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실망을 한다. 사람 몸에 대해서 많이 아는,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 지킬 걸 잘 지키는 의사들마저 아프다고 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고 덜 지키는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건강에 대해서 기댈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전지전능이어야 한다. 아파서는 안 된다. 혹시 감기라도 걸려서 근처 내과에 갔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여기 원장님하고 친해서 놀러왔다”라고 해야 한다. 결코 의사는 아파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의사도 좋은 일인데 현실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의사도 아프다.

 

언젠가 어지럼증이 생겨 병원에 갔다.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쓰여 여기저기를 다니다 안 돼 강남 성모병원 신경과를 소개 받아 갔다가 다시 이비인후과를 소개 받았다. 하도 오래 된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나는 대충 오전 11시쯤으로 예약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며칠 전에 어떤 검사를 하고 그 날 결과를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11시 반이 되어도 순서가 돌아오지 않다가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제 내 순서가 되었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게 진료실 안으로 들어 와서 기다리라는 지시였다. 이비인후과의사는 어떤 생활보호 대상자인 늙은 환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진료 하는 장면이 보이지는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조급하기도 했다. 의사가 생활 보호 대상자에게 돈을 안 들이고 진료를 받는 방법을 너무 상세히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에휴, 저런 건 다른 사람이 설명을 해 줄 수 없나?’ 하고 나는 한심하게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거기에 그걸 설명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빴다. 하여간 별로 돈도 되지 않는 환자를 위해 누군가가 그렇게 설명을 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은근히 걱정이 되는 일이 있었다. 잠시 후면 점심시간인데 이러다가는 진료도 못 받고 돌아가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었다. 자연히 시계를 자꾸 보게 되었고, 지나가던 간호사가 그런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우리 과장님은 오후에 진료가 없으세요. 그래서 오전 약속 환자를 저녁 10시가 되어도 다 봐주십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따듯한 말투였고 따뜻한 내용이었다. 오후 1시가 넘어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검사 상으론 별 이상이 없는데요.”

 

의사의 말에 나는 실망했다. 은근히 검사 상으로 이상이 있어서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많은데, 제가 지식이 짧아 도대체 어떤 과로 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런가요?”

 

“네, 그래서 그러는데 혹시라도 이 증상이 낫게 되면 제게 좀 연락을 주시겠어요. 환자들이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하는 게 너무 딱해 보여서.”

 

“네, 꼭 그러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고 일어나자 그분도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몇 발자국 따라 오면서 다시 말했다.

 

“꼭 알려주셔야 해요.”

 

“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급히 그곳을 떴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한 것 같아 미안하지만 내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도 내 환자를 그 의사처럼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해보고 싶어 발걸음을 서둘렀던 것이다. 그리고 며칠 동안은 그렇게 했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으니(하이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으니
그다지도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여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이
내 가슴 속까지 스며드누나

 

하나님이 너를 언제나 이대로
밝고 곱고 귀엽도록 지켜주시기를
네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고
나는 빌고만 싶어지누나


내가 외고 있는 유일한 시이다. 나는 이 시를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속으로 읊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모든 치과의사가 다 그렇다. 직접 시를 마음속으로 읊지는 않지만, 이런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치과는 그 특성상 치과의사의 손길이 오랫동안 환자의 입 안에 남는다. 그래서 치과의사들은 최선의 치료를 하며 또 그 치료가 오래가기를 기도하는 존재이다. 최선이다. 최선을 다하고 기도를 한다. 대충 치료를 할 수는 없다.

 

만약에 어떤 치과의사가 치료를 마친 환자에게 기도하듯 -오랫동안 귀엽고, 예쁘고, 깨끗하게 유지하세요.- 라고 했을 때 환자가 - 원장님, 밝고, 곱고, 귀엽지가 않은데요.- 라고 대답한다면 정말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늘 갑자기 예전 만났던 의사 생각이 난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나는 다시 또, 내가 오래 전에 만났던 강남 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과장님처럼 환자를 최선을 다해 치료할 것이다.

안계복 안치과의원 원장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 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대표전화 : 02-2024-9200 | FAX :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 광고관리국 02-2024-9290 |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