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의료윤리, 어떤 걸 가르치고 생각해 봐야 할까요?

  • 등록 2025.07.30 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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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78)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그래도 확고하게 자리를 잡으셨잖아요. 워낙 하는 일도 많으시고.”

“다른 분들은 제가 뭘 하는지 잘 모르셔요. 아무래도 교실이 치의학교육학교실로 되어 있으니 교육학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고요.”

“아, 옛날에 저희 의료윤리 교수님들과 똑같은 상황이시네요. 그래도 이쪽에선 거의 선구자인 거잖아요?”

“지금까지 그런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게 슬프네요!”

 

며칠 전에 한 의대 교수님과 나눈 대화 일부를, 표현을 조금 바꾸어서 옮겼습니다. 치과계에서 의료윤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화라고 생각해서 가져왔는데요. 오늘은 먼저, 최근 논문을 하나 정리하면서 했던 생각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국 치과대학에서 의료윤리 교육에 관한 것이었어요.

 

2025년 현재, 전국 11개 치과대학에는 어떤 형태로든 의료윤리 과목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예 “치과의료윤리”를 표방하는 과목을 가진 학교도 있고, PBL(문제중심학습)이나 통합과목에 같이 편성하여 운영하는 학교도 있어서 학교마다 수업 방식이나 내용에는 차이는 있지만요. 최근 한국의료윤리학회 학술대회에선 의과대학, 치과대학, 간호대학 의료윤리 교과목의 내용을 주제 분석한 발표가 있었는데 치과대학의 경우 교육 제공 방식도 상이하며 통일된 내용도 없다는 결과를 도출하셨어요. 부끄럽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임을 잘 알고 있어서 달리 답할 말도 없었습니다.

 

저도 2018년에 치과대학 의료윤리 교육 현황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습니다. 그때도 이미 각 대학엔 의료윤리를 가르치는 과목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 방향이나 계획이 잘 정립된 학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게, 일단 학교도, 교수자도, 이를 둘러싼 바깥도 치과에서 의료윤리가 무엇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윤리와 별도로 의료윤리라는 분야가 있는 이유는 의료 영역에서 수행되는 여러 일이 일반적인 “윤리”적 접근으로만 해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일반 윤리를 가르치는 것은 불충분합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치과의사 개인의 윤리적 견해를 의료적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의료윤리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의료윤리는 말 그대로 의료적 상황에만 적용되는 윤리이므로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방식의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 살인 금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존엄사 도입 논의에는 찬성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지요. 또한, 의료적 상황이라는 맥락적 제한이 있기에 의료윤리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의료 행위는 기본적으로 환자와 의료진 사이에서 사회적 맥락에 따라 구현되며, 따라서 의료윤리는 개인의 결단이 아닌 집단의 합의를 요구합니다.

 

또한, 의료법과 별도로 의료윤리라는 영역이 있는 이유는 법이 의율하는 영역이 의료 행위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입법이 의료 행위의 틀을, 행정이 의료 행위의 절차를, 사법이 위법한 의료 행위에 대한 처벌을 구현하지만 그것이 저희의 진료 행위 전부에 대한 규범적인 답을 제공하지 않지요. 반면, 의료윤리는 의료 행위 전체에 적용되며 우리가 좋은 진료를 추구할 때 언제나 참고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물론, 윤리는 법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지 않기에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관계이고, 늘 같이 검토가 필요하지요.

 

의료윤리의 내용에 관해선 오랜 시간 이 지면과 여러 활동을 통해 말씀드리고 있기 때문에 오늘 다루지는 않으려 합니다. 단지, 이 지면을 챙겨봐 주시는 감사한 분들에게 요청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내용들인데요, 치과에서 의료윤리를 가르치고 이야기하려면, 특히나 지금 우리 치과 현실에서 의료윤리의 내용을 말하려면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칼럼이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이지만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것들, 특히 미국 등지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회적으로 (주로 강령, 지침, 보고서, 심지어 교과서와 논문의 형태로) 내려진 합의들을 소개하는 것까지입니다. 이 정도로도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이 꽤 있기에 지금까지 칼럼에서 여러 내용을 다루어왔습니다만, 지금 여기에서 새로 벌어지는 문제들은 저 혼자서 답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여전히 자주 물어보시는 과잉진료나 덤핑, SNS의 교묘한 광고 전략과 같은 것에 대해서 이미 저희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기에, 외국의 이전 사례를 참고해 봐야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뜻이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의과는 아직 이런 문제를 의료윤리의 중심에 놓고 다루지 않고 있고요.

 

이런 논의를 하기 위해 의료윤리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한두 명 있는 건 당연히 좋긴 한데, 그것은 합의를 위해 필요한 논의 형성 과정, 절차, 결정에서의 필요 사항들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최종 답안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당사자에게서 나옵니다. 쉽게 말해, 당장 우리 치과계의 문제라면, 치과의사가 모여서 여러 가지로 논의해 보고 답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라고 하는 점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의과도 마찬가지지만) 치과라고 하는 전문 영역에 관한 논의이기에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판사나 변호사도, 심지어 국가도 이러저러하다고 끼어들기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지요. 손을 놓고 있으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억지로 끌려갈 것이기도 하고요.

 

아시는 것처럼, 저희 치과계엔 이런 논의의 자리가 없습니다. 그저 제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있다면 함께해 주십시오. 그리고 없다면, 같이 이야기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의료윤리가 지금 여기의 치과계에서 의미가 있으려면, 먼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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