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전세계는 상식을 뛰어 넘는 그의 언행에 연일 술렁이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권 국가인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라 부르는가 하면, 덴마크령의 그린란드를 상의도 없이 미국에 편입시키겠다고도 하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심지어 생방송 중임에도 ‘당신네 나라는 거지 신세’라고 모욕하며 백악관에서 쫓아내기도 했다. 오랜 동맹인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수십 년간 미국을 착취해온 대표적 나라들’이라고 하는 등, 천박(?)하게 자기 힘자랑에 열심인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협상을 위한 계산된 언행이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인들에게는 충격이고, 지난 미국 대통령들은 그 누구 보다 점잖은 성자이고 신사였다는 느낌이다.
그간의 글로벌 정치, 외교가 비록 위선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체면과 예의를 갖추었다면, 이제는 아예 가면을 벗어 던지고 원래 그대로 ‘날’ 것의 원초적 욕망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러워진 느낌이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돌고 도는 역사의 필연일까? 세계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제국주의시대를 겪은 지 채 100년도 안되어 다시 그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보다 아픈 제국주의 시대를 겪은 우리는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나온 우리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보고 싶다.
먼저 가까운 실패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최근의 동물적인 정치외교 상황과는 정반대로 조선에서는 극단의 성리학적 ‘명분’이 최고의 가치였다. 원리주의 유교사상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수립된 조선은 유교적 ‘도덕’만을 추구하는 관념주의에 빠져 나날이 국력이 쇠약해져 갔고, 마침내 왜란과 호란을 연이어 겪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이어진 호란을 맞아 청은 자신들은 원래 고려에서 나왔고, 이를 고려하여 형제국가를 맺고자 하였고, 이후에는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이를 수용하면 침공치 않겠다고 제의한다. 하지만 당시 사대부들은 도발에 대비도 하지 않아 전투를 할 군대도 없었음에도 ‘야만의 오랑캐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고, 명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명분’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청의 침공에 국토는 다시 초토화되었고 국왕은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으며, 무려 50만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후에도 여전히 조선은 반성하지 못했고, 국방강화와 피폐해진 민생회복을 위해 밤새워 논의하기에도 부족했을 시기에 엉뚱한 ‘예송논쟁’에 몰두한다. 왕실의 상복을 1년을 입어야 하는가, 3년을 입어야 하는가를 두고 어느 것이 성리학의 예법에 더 맞는지 무려 수십년간 당파를 나눠 서로 싸운 것이다.
물론 성리학을 국교로 삼은 자체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성리학은 ‘인간을 동물적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도덕적 주체’로 규정한 철학으로 평화와 풍요의 시대라면 최고의 인본주의 사상의 하나이고, 유교철학의 정수라고 한다. 하지만 동물적 본능이 지배하는 갈등과 전쟁의 시대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아쉽지만 같은 유교안에서도 그 장점은 살리면서 단점을 줄일 수 있는 다른 길도 있었다. 유교의 일파인 ‘양명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며 관념보다 실천을, 경전의 문구적 해석보다는 현실 문제 해결을 중시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이끈 유학자들의 사상적 배경도 바로 이 ‘양명학’이었다. 하지만 원리주의 조선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몰아 철저히 배척했다.
같은 시기 서양에서도 관념론과 실용주의의 대립이 있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중세 스콜라 철학으로 이어지며 유럽은 문명의 암흑시대를 맞는다.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고, “천사는 바늘 끝에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가” 와 같은 마치 우리 조선시대 상복논쟁과 유사한 황당한 논쟁이 우선시 되었고, 실용적인 과학과 지식은 천대받았다. 그러나 다행이도 유럽은 절대적 신권이 붕괴되었고 르네상스를 거쳐 베이컨과 로크의 실용주의로 방향을 틀었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명제는 ‘쓸모 있는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고, 이는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으며, 결국 유럽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반면 우리는 운 좋게 점화된 ‘실학’이라는 소중한 불씨마저도 살리지 못했고, 그 결과는 20세기 초 국권의 상실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위기를 멋지게 극복했던 경우는 ‘점잖은 채’ 명분을 따랐을 때가 아니라 ‘동물적이지만 본능과 실리를 좇았을 때’이다. 고려시대 거란의 침공 시 서희는 ‘거란이 진정 원하는 것은 송나라와의 단교’임을 깨닫고, 조선의 사대부들과 달리, 송과의 의리를 지킨다는 실속 없는 ‘명분’은 바로 버리고, 피 한방울 안 흘리고도 광대한 영토까지 얻어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역사를 보면 이렇듯 국익을 위해서는 ‘관념’의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적이고 역동적으로 대처한 우리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약했던 조선조차 건국 초기까지는 달랐다. 아직 성리학이 사회를 완전히 지배하기 전, 세종은 김종서를 보내 4군 6진을 개척하며 영토를 확장했고, 이종무는 대마도를 정벌해 왜구의 항복을 받아냈다.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적극적인 군사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원초적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될 가까운 미래의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아주 바람직한 자세라고 볼 수 있다.
다행히도 현재의 우리는 이러한 새시대의 격랑 속에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 첨단 제조업과 강력한 군사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고, 최근에는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까지 더해지면서 과거 구한말과는 달리, 이미 중견국을 넘어 ‘신제국주의의 한 축’을 담당할 수도 있는 국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힘’ 을 지속시키기엔 치명적인 약점을 해결해야 한다. 바로 저출산에 의한 인구감소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무기가 있어도 이를 운용할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뜬금없지만 적정 규모의 인구를 확보하기 위한 북한과의 ‘통일’은 시급해 보인다. 물론 출산장려도 필수이다. 최근 필자는 세자녀 이상 낳기를 입에 달고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필자를 마주치는 두 아들과 전공의들, 간호사들 눈빛이 좀 힘든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
이제 개인이나 국가나 PC주의(정치적 올바름)의 환상과 도덕적 결벽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나 국익만을 추구하는 영악한 정부, 국민이 되어 보자. 관념의 늪에서 깨어나 좀 더 냉혹한 현실주의자로 거듭나는 것, 그것만이 닥쳐올 ‘동물의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남아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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