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의사들의 폐업투쟁이 있고나서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고 의료기관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할 것 같다. 산골마을 주민들이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더니 지난 2월에는 의사협회가 또다시 대규모 집회를 열어 의약분업의 전면 재검토를 포함한 의료민주화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주장하는 의료민주화는 국민의 선택권과 의료인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제도로의 변화를 의미하며, 그 구체적 실행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선택적 분업과 민간의료보험의 도입, 그리고 회원에 대한 자율징계권 보장 등이다.
이 중 자율징계권 부분은 의협, 치협, 한의협이 공동으로 추진했던 것으로 일단 법제화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실현될 가능성은 무척 커 보인다.
어떤 의사의 행위가 윤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그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 의사들 뿐이며, 많은 의사들이 무분별한 과잉진료를 일삼는다고 비난받고 있는 현 상황에 비춰보아도 자율징계권은 하루빨리 도입돼야 한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규율함으로써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필요성에 비추어 이는 하루도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다.
그러나 전후좌우의 사정과 맥락을 짚어볼 때 이러한 주장이 쉽사리 여론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의료민주화라는 구호와 명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국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한국인은 미국인들처럼 그들의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미국과 한국의 의사들이 살아온 역사적 경험과 그로부터 파생된 윤리의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의 의사들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다양한 치료자들(동종요법, 추나요법, 정골요법 등)과의 경쟁 속에 생존해야만 했고, 그들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선택한 중요 전략 중 하나는, 비윤리적 행위를 일삼는 의사들을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자신들은 다른 치료자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의사윤리강령을 제정해 철저한 자율규제를 실천한다.
7개 항으로 구성된 미국의사협회의 윤리원칙 제2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와 동료를 대함에 있어 정직할 것이며, 인격과 능력에 결함이 있거나 사기 행위에 관련된 의사들을 적발 폭로하기에 힘쓴다.”
우리의 의사윤리강령은 제3장에 동료 보건의료인과의 관계를 4개항에 걸쳐 기술하고 있는데, 처음 3개항은 모두 동료에 대한 관용과 배려에 관한 내용이고, 마지막 항에서만 “의사는 동료 보건 의료인들이 의학적, 윤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 그것을 알리고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규정해 자율적 규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벼운 권고에 그칠 뿐 강력한 의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제도의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해져 왔다. 그래서 자율규제권이라는 것도 제도적으로 보장받고자 한다. 그러나 “자율”이란 말 자체에서 드러나듯, 그리고 의료전문직의 역사적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제도적으로 주어진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규제하려는 강력한 의지와 실천력을 보여주지도 않으면서 그 권한을 법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더구나 우리 치과의사들은 아직 변변한 윤리강령조차 갖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자율징계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그것을 실천하려는 강력한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