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원에 사는 것을 퍽 행복하게 여긴다. 왜, 무엇 때문에?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수원은 세계문화 유산을 가진 고도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수원은 성곽의 도시로 효를 이미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이 평일에도 수원을 찾아오는 수많은 학생과 일반인의 행렬을 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지. 여기에 외국의 관광객까지 늘어나 수원은 이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국제 도시가 됐다.
그런데 요즘 나에겐 행복 하나가 더 얹혀졌다. 바로 경기도치과의사회가 마련한 치의학 역사관 덕분이다. 아담한 실내에 정성 들여 진열된 치의학의 역사물을 보면서 나는 즐거움에 앞서 이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가치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전시관은 모두 3곳의 방으로 꾸며져 있는데, 그 보존돼 있는 품목이 다양하고 상태도 지극히 양호해 역사관으로서의 구실을 잘하고 있다. 180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의 치과 진료용 유니트 체어를 비롯 치과진료기구 진열장, 치과용 엑스레이기, 무봉관 제작기계 등 치과용 대형 장비와 소형 장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각종 치과의료 기구, 치과 전문 서적과 빛바랜 사진 등도 볼만한 자료다. 여기에 치과의 역사를 알려주는 소상한 자료도 곁들여져 이곳을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즉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총회 회의록을 비롯한 각종 회무자료 및 녹취록 등 초창기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자료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1850년대 영국에서 제작돼 한국, 영국, 미국, 일본에서 사용된 목재 의자였다. 요즘의 의자와는 느낌부터가 다른 목재 의자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치과의사들이 왕진시 들고 다녔던 가방도 빼 놓을 수 없는 눈요깃감이었다. 어찌나 크고 무거워 보이는지 과연 저 가방을 들고 다녔을까 싶었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경매를 통해 구입한 치과용 의자도 특이했다. 제작 연도가 1932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끌었다. 그런가 하면 ‘우표로 보는 치의학’이란 코너도 매우 흥미로웠다.
이 역사물과 자료 등은 거의가 개인이 소장했던 것을 내놓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외국에서 보관해오던 것을 들여온 것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경매 시장에서 사 들인 것도 있을 만큼 그 노력과 공이 참으로 많이 든 것들이었다. 또 1972년 일본에서 제작된 환자진료용 의자와 18세기 중엽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귀족들이 사용했던 목재 옷걸이는 지금 보아도 촌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 옷걸이는 당시 병원에서 진료복의 옷걸이로도 사용했다니 그 용도며 품격이 상당했던 듯 싶다.
이 역사관에는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견학을 왔는데 특히 치과의대생들의 교육 학습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청운의 꿈을 치의학 발전에 바치려고 한 젊은 학도들에게 이 역사물들은 생생한 발자취와 함께 치과인의 자긍심을 살려주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보았다. 또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육의 현장이 될 것 같았다.
역사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보존’에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보존에 소홀했던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훌륭한 문화를 지니고도 정작 이를 후대에 남기는 데에는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경기도치과의사회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이런 점에서이다. 어렵기 그지없고 난관 또한 적지 않은 이런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한 것은 오늘뿐 아니라 후대를 위해 실로 큰 일을 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직업 정신이며 나라 사랑이 아닐까. 초롱초롱한 눈빛의 유아들에서부터 푸른 꿈을 지닌 미래의 치과의사들, 나아가 일반 국민들에게 이 치의학 역사관은 더욱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심어주리라 기대가 된다.
윤 수 천 (아동문학가)
·충북 영동출생
·소년중앙문학상 동화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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