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2.서양 치과의사의 입국

  • 등록 2004.07.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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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과 같은 의사이며 선교사들에 의한 치과 치료가 행해진 후 13년 만에 미국인 치과의사가 한국에 입국했다. 최초의 서양인 치과의사인 라빈손(Robinson)이 입국한 것이다. 라빈손은 1897년 치과 질환 치료를 위하여 한국에 출장 왔으며, 서울의 독립신문에 광고를 내고 식자층을 위하여 치과 진료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라빈손은 1897년 중국 상해에 주재하며 출장 와서 벙커(D. A. Bunker)교사 집에 머무르며 진료했다. 다음 해인 1898년에는 해롤드 슬레이드(Harold Slade)라는  치과의사가 왔다.


“누구든지 잇병 있는 이는 상해서 온 치의(齒醫) 라빈손씨를 찾아보고 잇병 고치고, 이 의원은 정동 벙커교사 집에 유하더라.” 《독립신문》, 1897년 1월 9일자.
“일본 神戶에서 이 고치는 치의(齒醫) 슬레이드씨가 유람 겸 지금 대한 서울 정동 영국인 엥벌리씨 집에 와서 유하는데, 오래 유숙 아니하고 잠깐 있다가 갈 터이니, 그 동안에 이 고치려 하는 사람이 있거든 그리로 가시오. 이틀을 온통 다시 만들어 박을 사람은 상오 11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보고 조금 고칠 이는 상오 8시 반부터 하오 4시 반까지 본다니 이 고치려 하는 이는 속히들 가시오” The Independent : Notice vol.3, no. 22, 1898. 10. 18.


그는 1899년 10월 23일 광고를 냈다. 그 내용으로 11월 3일까지 서소문 이윤용씨 집 옆 테목사가 들었던 집에서 진료를 한다고 돼 있고 기간도 명시하고 있다. 그는 또한 1905년까지 매년 가을(10월경)에 와서 봄(3월경)까지 종로에 있는 한미전기회사 2층에서 치과치료를 한다는 신문광고를 했다. 이로 보아 해롤드 슬레이드는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온 서양인 치과의사로 정식 치과의원을 개설하지 않고, 유람 겸 출장 형식으로 친지 집에서 치과진료를 한 것이었다. 진료는 주로 총의치(總義齒)를 취급한 것으로 짐작된다.


1903년 가을에는 일본 고베(神戶)에서 개업을 하고 있는 치과의사 소어스(James Souers)가 내한해치과 진료를 했다. The Korean Daily News : Notice vol.1 no. 40, 1904. 9. 2.
1904년에 단기간이나마 제물포의 스터워드호텔에서는 일본 요코하마(橫濱)에서 개업중인 치과의사 니이(Daniel B .Nye)가 치과 진료실을 갖추고 출장 형식의 치과 치료를 하기도 했다. The Korean Daily News : Notice vol.1 no. 44, 1904. 9. 6.
이들 출장 온 미국인 치과의사들은 신문에 광고를 내어 보철 환자를 치료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신문을 볼 수 있었던 특수한 계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환자의 대부분이 상류층이었을 것이므로 치료비를 비싸게 책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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