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내 앞에 놓인 현실은 내게 차려진 최고의 밥상이다

  • 등록 2004.07.2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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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의식의 어두움을 불가에서는 무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생명이 부딪치는 장애를 경계라고 한다. 밝지 못한 상태에서는 무엇이나 장애이며 경계가 될 수 있다. 경계란 마치 불 꺼진 방안을 돌아다니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는 편리를 위해 놓아둔 가구조차 장애물이 된다. 그러나 불이 켜지면 부딪쳐 아프게 하던 것은 장애가 아니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며 도구임을 알게 된다.


얼마 전 고추밭 울타리를 기어가던 쐐기가 원통형 쇠기둥의 끝에서 계속 원을 돌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둥의 위가 막혀있지 않은 탓에 건너가질 못하는 것이었다.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 또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 때론 다른 녀석과 부딪치기도 하고 때론 같은 방향을 돌기도 하는 녀석의 계속되는 돌기는 좀체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줄이 이어진 다른 쇠기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녀석은 물이 고여있는 기둥 안으로 떨어져서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 나오는데, 몸이 다 빠져 나오기도 전에 새가 날아와 물어가 버렸다.


방향만 돌리면 될 것을 한 걸음을 건너뛸 지혜가 없어 끝없이 원을 돌아야 하고, 살려는 본능만으로 허우적거리는 쐐기의 밝지 못함이 바로 장애이며 경계이다. 무명이 바로 경계를 가져오는 것임에도 사람들은 경계를 두려워하여 피하려고만 한다. 경계의 실체는 없다. 다만 밝지 못함으로 인해 부딪치게 되는 자기 장애를 통해 쐐기와 같은 미물도, 우리 인간도 조금씩 지혜를 틔우며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苦는 없으며, 진화를 돕는 선물이라고 까지 말하는 것이다.


진화가 아니라면 생의 의미는 없다. 고의 의미는 더욱 없다. 윤회의 참뜻도 여기에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의 협조자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악이나 부정적인 감정조차도 버릴 것이 없다. 더럽다고 느끼는 마음 때문에 청결을 유지하고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보이는 현상만으로 좋다 싫다, 이롭다 해롭다 쉽게 재단해버린다. 이렇게 축적된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곤 한다.
다행히 우주의 질서는 고정관념의 감옥 속에서 언제까지나 안주하도록  버려두진 않는다. 나의 어두움을 깨치기 위해 경계라는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주어진 현실은 내게 차려진 최고의 밥상이며 만찬이라 하는 것이다.


주어진 현실이 내게 가장 필요한 양식임을 믿고 잘 요리해서 먹을 때 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진화다.
쐐기가 새에 잡아먹히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고 허무를 말하기 쉽다. 그러나 먹고 먹히는 작은 행위조차도 전체를 살리는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혹 누군가 섣부른 연민을 갖고 구하려고 나설 때 이는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을,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가 된다. 인간의 삶도 이 같은 우주의 질서를 벗어나 있지 않다. 상생하는 우주의 질서를 믿는다면 죽음조차도 긍정이 된다. ‘나’ ‘나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남을 전제로 할 때 죽음은 낡은 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듯 새 생명을 얻는 기회인 것이며, 쐐기는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새가 되어 겁의 진화를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 된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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