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무상은 생명력이다

  • 등록 2004.08.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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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모든 이는 반드시 겪게 되어있는 것이 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바로 죽음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눈물을 흘리며 몹시 비통해하기는 해도 정작 죽음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탐색하는 이는 별로 없다.
형제나 부모의 죽음 앞에 지나치게 슬퍼하는 것은 죽음의 가치와 실체를 몰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부처님의 전생담이 있다.
부모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형이 죽자 친척은 물론 이웃까지도 몹시 슬피 울었다. 그런데 아우만은 울지 않고 평소 자세를 흩트리지 않은 채 장례를 치루었다. 이런 아우를 보고 사람들은 비난하며 욕했다. 친족까지 그를 비난하고 나서자 아우는 조용히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스스로가 무지하기 때문에 슬픔에 잠겨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형이 죽었지만 나도 얼마 뒤에는 죽을 것이요. 당신들도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은 사람에게만 매달려 슬피 울고 죽어가고 있는 자신과 남을 위해서는 울지 않습니까? 모든 목숨은 덧없는 것이어서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죽지 않고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어 이런 진리의 법칙을 모르기 때문에 울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읊었다.


‘그대들은 죽은 이만 슬퍼할 줄 알고
지금부터 죽어 가는 이는 슬퍼하지 않는 구나.
목숨을 가진 이는 누구나
차례로 그 목숨을 버리나니.
천인도 네발 가진 짐승도
하늘을 나는 새나 땅 속의 뱀들도
그 몸은 어디에도 실체가 없나니
때로는 한창 나이에도 그 목숨을 버린다.
(생략)


태어난 모든 생명은 끝없는 생사의 교차점을 지나 서서히 죽음으로 향한다. 일상 속에서 죽음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사람들은 마지막 호흡을 거두는 때만을 죽음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루하루 늙어 가는 것이 죽음이고, 매일 밤 잠드는 것이 죽음이며 한 생각이 올라왔다 사라지는 것이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경계가 따로 없이 교차하며 흐르고 있다. 다만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은 죽음을 마치 한 조각 구름이 생겼다가 사라지듯 자연법칙의 한 순환으로 파악하셨다. 부처님이 일체 현상에 대해 철저히 깨달으신 것은 ‘무상’이다. 무상이란 말 그대로 ‘항상 함이 없다’는 뜻이다. 항상 하지 않음은 절망이기도 하고 희망이기도 하다. 또 죽음이기도 하고 삶이 되기도 한다. 무상은 결코 허무가 아니다. 오히려 긍정이며 생명력이다. 아이가 태어나 자라지 않고, 수족을 못 가누는 늙은이의 상태로 계속 산다면, 가난한 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없다면 어떠하겠는가? 물은 흘러가므로 썩지 않는다. 삶도 이와 같아 항상 하지 않음으로 생동감 넘치고,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이미 지난 일에 대한 생각으로 삶을 무겁게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존재의 실상을 철저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무상함을 철저히 인식할 때 오히려 삶을 여여하게 살 수 있으며, 죽음에 이르러서도 평상시의 아침을 맞이하는 잠을 청하듯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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