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58)]양초회

2005.11.17 00:00:00

1924∼5년경이라고 생각한다. 사카이 고이치(酒井好一)는 경성에서 최초로 학교에 납품을 하기 시작한 치과 재료상이며 후에 고토 후운당의 치과주임이었다. 당시는 젊어서 취미가 우리들과 비슷하여 이야기가 잘 통했다.


어느 날 오카다 타다시(岡田正), 코우노 기헤이(河野儀平衛), 야오 타로(失尾太郞), 사카이 고이치(酒井好一)의 4명이 기공실에서 최초로 소고기 전골로 한 잔하기로 결정했다.
사환인 박운기(朴雲基)군에게 준비를 부탁하고 용의주도하게 연회를 베풀었다. 젊은이들이므로 이야기가 활기를 띠었고 서서히 저녁 어둠이 다가왔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등의 설비가 없으므로 양초 아래에서 하이쿠회(俳句會), 이른바 원좌(圓座)를 열었다. 이것이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 최초의 구회가 되었다. 그 후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도 들어왔다.


하세카와쵸(長谷川町)시대, 아마 쇼와9년경 오카다 타다시(岡田正),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 쿠와야마 쿠니마츠(桑山邦松)들이 니시무라 코우호우(西村公鳳)의 지도로 석남회 지부를 만들었다. 이번은 반대로 내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후 학생들도 매월 1회 구회를 열었다.
1930∼31년경이 되자. 전쟁 덕분에 물자는 부족하게 되고 학생들도 점점 마음의 거처를 잃어 어딘가에 마음을 쉴 곳을 찾았다. 그 때 우리들이 중심이 되어 하이쿠로 위안을 얻고 근로동원 중에도 틈만 있으면 구작했던 것이다.


당시의 학생들 가운데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야사키 다케오(矢崎武男), 이나타 쿄히라(稻田杏坡), 하마토 다케시(兵動猛), 도쿠나가 요우사이(德永暢材), 야마타 도시로쿠로(山田俊六郞), 나카모토 마모루(中本寺), 이한수(李漢水) 등 여러 명으로 모두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수년전 와카야마(和歌山)에서 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어느 저녁 유아사(湯淺)의 사카이(酒井)의 요청으로 댁에 모여 정말로 오랜만에 양초회를 열었다. 그 때는 건강했던 오카다 타다시(岡田正)를 비롯해 사카이 고이치(酒井好一),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 야오 타로(失尾太郞), 여기에 큐슈(九州)의 요코다 세이죠(橫田成三)가 더 추가되어 양초가 아닌 전등의 아래에서 구회를 열었다. 아마도 30년만인지 모른다. 아주 유쾌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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