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J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희경씨는 매일 아침 시골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는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걸어온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저 잘 있냐? 하였다. 희경씨가 아직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잘 있어요, 하고 나면 두 모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역시 어머니 편에서 그럼 더 자라, 하면서 수화기를 내려 놓으려고 할 때야 희경씨는 어머니! 부른 다음에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라고 물었다. 그러면 어머니 쪽에서는 아니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 일이 열흘 이상 반복되고 난 뒤의 아침에야 희경씨는 침대 속에 파묻힌 채 골똘히 어머니가 걸어오는 전화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기 시작했다.
무슨 일 일까?
희경씨로서는 어머니가 왜 그러는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빈 속에 커피를 한잔 타 마시고 앉아 다시 생각해봐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희경씨는 어머니가 왜 그러는지 여동생 J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J에게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J가 서울에 있을 때도 희경씨는 어머니에 대한 궁금한 게 생기면 J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곤 했었다. 어머니 생일 선물은 뭘 했으면 좋겠는지? 어머니의 퇴행성 관절염은 어떻게 치료가 되어가고 있는지?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희경씨가 언니인데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J가 언니 노릇을 해왔던 셈이다. 어머니와 J는 서로 대화가 잘 통했다. 대화가 잘 통했다고 하기 보다는 두 사람은 서로 늘 소통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얘기도 늘 하던 사람과 더 할 얘기가 많은 법인지 두 사람은 늘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희경씨가 J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특별히 할 말씀도 없으신 것 같은데 아침마다 전화를 하시는데 왜 그러신 대니? 묻자 명랑한 목소리를 내며 반가워하던 J가 갑자기 어머니가 그래? 하면서 조용해졌다.
“왜 그러시는데?”
“……”
“ 답답해 죽겠네,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데?” “내가 서울에 있을 땐 내가 매일 아침 전화를 엄마한테 했었거든”
“니가?" “응”
“매일 아침 전화 해서 무슨 얘길 했니?”
“엄마가 좋아하는 일일연속극 그 전날 밤에 방송된 거 보고 서로 감상평 말하고 그랬지.”
“일일 연속극? ”
“응, 엄마가 좋아하는 아저씨 배우 얘기도 하고, 아침 먹었냐? 오늘은 뭐 할 거냐? 어젯밤은 잘 주무셨냐? 어디 아프신데는 없냐? 뭐 그런 얘기…”
“엄마가 어떤 아저씨 배우를 좋아하는데?”
“주현 아저씨… 엄마 말씀에 의하면 배가 근사하게 나왔대.”
희경씨는 J와 통화를 하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빈속인데도 커피를 한잔 더 마셨다. 그리고 멍하니 책상 위를 쳐다보았다. 새벽 4시가 다 될 때까지 번역에 매달렸으나 마감일 까지는 맞추기가 힘들 정도로 양이 많이 남았다. 과학 상식이 필요한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는 원고라서 번역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하고 책상에 앉으려다가 희경씨는 마음이 착잡해져 시골집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어머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J와 어머니가 아침마다 통화를 하고 지냈다는 사실을 희경씨는 몰랐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희경씨보다는 여동생 J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J는 희경씨보다 다정한 성품인데다 삼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J는 어머니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것 같았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고 번역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겸업하고 있는 희경씨 보다는 결혼을 한 J와 어머니는 일상에 대해 함께 할 일도 훨씬 더 많았다. 그런 게 당연한거라고 희경씨는 생각하고 있었다.
제부는 삼십대 중반의 삶을 다시 재편해보고 싶은 마음에 회사에서 미국으로 연수를 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지난 일년 동안 공부를 했고 그 성과가 있어 J와 아이들을 데리고 이년 반 기한으로 미국으로 떠난 거였다. J는 약사 일을 접고 떠나야 하는 것에 고민을 했지만 희경씨는 제부에게나 조카들에게나 그리고 J에게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니 떠나라고 부추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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