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64)]경성치과의학교 부속의원의 기적의 재식수술

2006.01.05 00:00:00


개원 1개월 정도 지나 진료실에 평정이 가득 차게 되었다. 환자 대응도 외관으로는 선생인지 학생인지 상대편은 모르지 않을까 생각되는 분위기였다. 학생도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낯익은 환자들과 달리 옷차림이 좋고 고급스러운 청년이 내원했다. 예진해보니 몇 군데 진료소를 연이어 돌아다니다 왔다는 말투였다.


“여기라면 학교의 부속의원이니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제를 하고 백지에 싼 5개의 이를 꺼냈다.
“어제 맥주 뚜껑을 이로 땄는데 동시에 이것도 빠졌다, 원래의 장소에 심고 싶다. 어느 치과의도 안 된다고 한다. 기공처치 없이 어떻게든 부탁한다”라고 말하였다.
오카다 시로(岡田四郞)는 정말 곤란했다. 즉시 재식이라면 학생의 때, 한번 경험한 바 있었다. 재식이 얼마나 곤란한 것인지 특히 이 치아는 오염되어 있다.


“재식해도 성공률은 극히 드물고 실패하는 쪽이 많다”고 이야기해도 실패를 각오하니 “제발 해주세요”하고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다. 한가한 학생들이 흥미 깊게 둘러싸고 있다. 나도 할 의욕이 생겼다. 성공률은 없다고 해도 학생들을 위해서는 좋은 임상경험이었다.
우선 환자의 치아 근첨부를 완전 근관충전하고, 부식은 없으므로 교합면 처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근첨부(根尖部)를 조금 포인트로 소제연마하고, 치근막을 제거하고 처치 완성하여 옥시풀 안에 투입했다.


환부는 전달마취 후 청소, 강력히 소독하고, 오염되어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환자의 치아를 옛 위치에 삽입하고 우선 방충 씰크로 결찰한 후 편측 인상채득 하고 그날의 처치를 완료했다.
다음날 종창, 발적은 당연하였고, 정해진 법대로 처치한 후 어제의 인상에서 셀룰로이드로 만든 보정기를 장착하였다. 2일∼3일 회를 거듭함에 따라 환부의 상황이 예전에 한 첫 번째 시술 때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확인했다. 성공할지도 모른다. 흥미가 일었다. 대개의 실패는 일주일 또는 10일 후 라고 듣고 있었다. 안심은 할 수 없다. 학생도 매일 지켜보고 있다. 20일간 계속되었고, 성공인 것 같다. 보정기를 제거하고 교합시켜 보니 교합할 수 있다고 한다. 골식도 좋고, 빠질 것 같지도 않고, 통증도 없다고 한다.


오카다 시로(岡田四郞)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기했다. 환자는 생긋하며 기뻐하는 것 같다.
“뼈가 생기고, 강해지는 약을 먹었습니다.”
“약은 무엇입니까?”
“호랑이 뼈를 부수어, 먹는 겁니다. 조선에서는 옛날부터 그렇게 입으로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그 후 그 환자는 내원하지 않았다. 아마 골성 유착 되었다고 생각한다. 담당술자가 누구였는지 잊었지만 지금도 생각 나는 진귀한 경우였다.


1개월이나 지났을 무렵 요시나가 테이(吉永 貞) 서기는 퇴직하고 조선 남쪽으로 갔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그 후 학교 서무회계는 모두 코우노 기헤이(河野儀平衛) 서기의 손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부속의원의 회계, 약품, 재료의 담당으로 경성약전 출신의 참한 아가씨가 왔지만 장기 근무하지 않았다. 그 후에 박운기가 와서 겨우 안정되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