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태/월요칼럼]암 환자의 그 깊은 심연의 세계

2006.05.08 00:00:00

암 환자의 증가율과 함께 암에 대한 의학적 치료방법도 아울러 발전하고 있다. 암 환자에게 “당신은 암이다”라고 최초에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의 논의는 암이 발견된 이후 암의 완전정복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암이 있다 없다를 알릴 경우에 “당신은 암입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 말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뉴욕의 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게 암을 알리는 문제에 관해서 리포트 한 적이 있었다. 그에 의하면 만약 의사가 “당신의 질환은 암입니다”라고 환자에게 말을 했을 때 그 말을 들은 환자는 48시간 정도의 몸부림치는 슬픔 속에 격랑 같은 언행을 쏟아낸다고 보고하였다. 이와 같은 격랑상태를 ‘그리프 리액션(Grief Reaction)’ 스테이지라고 한다.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격심한 심리적인 급성 동요 속에서 울분을 터뜨리는 암 환자의 초기단계의 심정을 느껴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까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꽉 막히는 시간과 공간일 것이다.


일단 그리프 리액션 시기가 지나면 환자는 오히려 마음에 균형을 잡고 주변 사람에 대한 협력적인 태도와 암 환자로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정과 균형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불편하고 고통도 많이 뒤따르는 암 질환이지만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더욱 깊숙하게 침잠하게 된다. 그리고 세상을 쳐다보는 눈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정의로운 철학의 단상 속으로 걸어가는 초롱초롱한 위대한 모습들이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도 암에 걸린다. 수없이 암 환자에게 암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의사도 자기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일반 암 환자들과 똑같은 심리적인 과정을 겪을 것이다. 심적인 충격은 건강한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할 것 같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 암 환자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철학적, 사색적으로 달관된 초연한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 것 같다. 비록 그리프 리액션을 겪더라도 영원한 평화와 안식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주는 모습이 있다면 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태일 것이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어떤 선배의 투병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심리적인 통증을 이겨내면서 항상 미소와 활력과 용기로 인생을 담담하게 걸어가고 있는 그 모습은 ‘어쩌면 저렇게 강할 수가 있을까’하고 잠깐 묵상하게 되는 경우가 가끔은 있게 만든다.


그 선배와 함께 술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 선배께 말하기를 “형! 술을 마셔도 되겠습니까? 술 안 마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하고 사양을 해 보았지만 그 선배는 막무가내로 “사람이 사는 동안 한결같아야지 암 선고 받았다고 술을 한잔 먹고 싶은데 못 먹어서야 그 얼마나 비참하겠나? 한잔만 간단히 하세”라고 말하는 바람에 술을 먹기 시작한 적이 있었다.


술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시종 그 선배의 얼굴을 응시하며 ‘술을 먹어서는 안 될텐데…’하면서 마음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배 댁으로 살짝 전화를 걸어서 선배 부인에게 알려주었다. “선배께서 지금 술을 마시고 계시는데 술을 그만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모시고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하고 말했더니, 선배 부인의 대답을 듣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양반은 자기가 잘 알아서 자기병을 컨트롤하는 유능한 사람이니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도 잘 받고 있고 스스로가 정신치료도 잘 한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정신과 의사이자 암 치료의사입니다. 그 분의 병은 날로 좋아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속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안도의 마음이 서기도 해서 “그러면 선배가 술을 많이 먹어도 제재시키지 말까요?”라고 했더니 “그 분은 암에 걸린 후부터 의지가 대단히 강해져서 스스로가 술을 그만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되면 스스로가 먹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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