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84)]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의 쇼오후우 켄지(松風憲二) 추억)(하)

2006.06.01 00:00:00


이 무렵 고토(後藤) 후운토(風雲堂)는 치과부를 설치하고 사까이 코오이찌(酒井好一)가 학교의 한 방에 재료를 진열하고 있었다.
그 당시 총독부 경무국 안에 약무부에서 나카조 히로시(中條弘)가 치과 그 외 약품의 담당이었다.
조선에는 가장 우수한 제품이외에는 일본으로부터 구입하지 않도록 하고 쇼오후우(松風) 제품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 치과재료학의 강의를 쇼오후우 사장에게 의뢰하고 실시하도록 하고나서부터 일본의 치과의학전문학교에서도 지금처럼 각 전문학교에 재료학의 연구를 한 교수가 없어 일본대학 치학부,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 등에서도 쇼오후우 사장에게 재료학의 강의를 부탁했다. 그리고 오오사카(大阪) 치과대학에서는 미야츠 하지메(宮津一) 공학박사가 재료학의 강의를 의뢰받아 계속하고 있다.


쇼오후우 회장과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는 정말로 친밀한 사이이고 나기라 다쓰미는 오랫동안 쇼오후우 도치의 고문을 하였다.
그리고 더욱 상세한 사항을 회장에게 집필하도록 하는 약속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위급상황의 큰 환자가 되었다. 나기라 다쓰미는 건강한 신체가 되도록 염원하였다.
어느 해 10월 24일부터 27일에 걸쳐 일본치과의학회가 오오사까에서 개최됐으며, 그 기계재료 전시회는 오오사카 국제견본시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쇼오후우 도치의 진열장은 타 기계재료점보다 제일 넓고 좋은 장소를 배당 받았다.
종래의 치과재료의 진열법은 단순히 물건을 진열하는데 머물고 있어 관람자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다.


나기라 다쓰미는 뭔가 바뀐 방법으로 진열하도록 하고 쇼오후우 세이지(松風定二) 지배인에게 종종 진언하였고 쇼오후우 세이지도 외국의 이 종류의 회합에도 자주 출석하였다.
거기서 제발 뭔가 다른 진열방법을 얻고자 해서 우선 가메타(龜田) 기술원으로 하여금 포스트 그라운드에 저용도재를 사용하여 제조하는 방법을 텔레비전에 영사하고 실연하게 하여 많은 흥미를 일으키게 했다.


그 외 아말감 연화기를 실지에 응용하여 연화상황을 일반의 관람자에게 접촉해 보이게 하고 그 연화상태의 경연 또는 그 사람의 기호에 보다 수은의 정도를 조절하는 등의 방법을 실연하게 하였다.


그 외에 이번 보철학회에서 회원들이 이것이면 충분하다는 의견이 일치하여 만들었다는 간편한 교합기에 총의치를 장착하고 회원 각자가 자유롭게 손에 들고 교합기를 움직이고 전후좌우 운동 등의 조절을 시험해 보게 했다.
우선 이런 방법은 최근에 없던 진열방법이 되고 내가 본 바로는 더 이상 이유를 댈 여지가 없는 진열방법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학회가 끝나고 아마도 11월 2일 회의실에서 쇼오후우 사장, 연구원, 영업원들이 회합하여 이번의 진열에 대한 비판을 했다. 그 때 회장인 쇼오후우 켄지(松風憲二)도 출석하여 상당히 날카롭게 비판받고 상당한 반발도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 오전 2시경부터 갑자기 심근경색증에 걸려 위험상태가 되었다. 재빨리 교토(京都)국립병원 내과 오오야(大谷) 의장(醫長)의 진료를 받고 최선의 주사 그 외 내복약 등과 가족 일동의 간호 결과 우선 회복되었다.
11월 25일 현재 내가 회장의 대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 되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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