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87)]경성치과의학교의 교사

2006.06.22 00:00:00

1922년 4월 1일 경성치과의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학교의 인가를 받았지만 교사를 어디로 결정하는가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치과의학교를 만들려해도 자금이 없고 어떻게 할 것일까?”

 
먼저 교사가 제일 문제이었다. 그 당시 황금정 6정에 경성약학교(京城藥學校)가 있어 주간 교육이므로 이 교사를 저녁 중 빌려서 수업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시가 키요시(志賀潔) 원장에 의뢰하여 경성약학교장 코지마 타카노부(兒島高信)에게 경성약학교를 경성치과의학교 야간에 교사를 빌려주도록 교섭하였다. 그렇지만 코지마 타카노부(兒島高信)의 승낙을 얻지 못 하였다.


그렇게 되자 시가 키요시 원장이 총독부의원의 건물을 수리하여 경성치과의학교에 무상으로 빌려 준다고 하므로 그렇게 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학교를 빌리지 못한 것이 거꾸로 경성치과의학교의 장래의 발전에 큰 이익이 되었다. 그것은 치과의학교를 위해서 시가 키요시 원장과 요시다 야고에몬(吉田·五右衛門) 사무관이 전력을 다해 준 따뜻한 정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계신 요시다 야고에몬이 그 당시 조선총독부의원의 사무관이어서 의논을 많이 했다. 그리하여 의학전문학교의 교실을 야간에 사용하게 노력해 준 것이었다.
첫 해는 옛날에 의학전문학교의 B강당이라 말하던 지금의 경성의학전문학교의 본관이 된 건물로 그 후 개축하였지만 당시는 총독부의원 시료외래의 뒤에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 건물을 빌려 야간에 교육을 실시한 것이었다.


“처음 의도대로 만약 약학교를 빌려서 야간교육을 하였다면 오늘날 치과의학전문학교가 생겼을까?”
아주 의문이라고 생각되었다. 다행이도 그곳에서 거절당한 결과 시가 키요시 박사와 요시다 야고에몬 사무관이 많은 동정을 받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편의를 받았던 것이 요컨대 오늘의 치과의학전문학교가 된 근본 원인이었다.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는 언제나 이것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시가 키요시 원장과 요시다 야고에몬 사무관이 오로지 경성치과의학교의 고문처럼 해주었다.
모든 교직원의 임명에 있어 의학전문학교의 직원 혹은 총독부의원의 직원을 전부 희생적으로 경성치과의학교의 겸임교수로서 배려를 하였다. 아주 감사하였다.
당시 학과과정이나 교실 문제로 야간 교육을 하였다. 수업기간은 2년으로 매주 약 20시간에서 22시간의 강의로 하루에 3시간에서 3시간반정도의 강의를 실시하였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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