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 이야기 치과역사(88)]경성치과의학교 개교식

2006.06.29 00:00:00


1922년 4월 15일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그때 지금의 대학병원 시료외래 2층에 의학전문학교 강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곳을 빌려 개교식과 입학식을 거행하였다.
학교의 사명은 조선인 자제의 교육이기에 조선인의 유력자를 규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일합병 당시의 큰 역할을 한 백작 송병준의 집을 방문하여 이러한 계획을 실천할 생각이라고 말하였다.


“대 찬성입니다. 크게 해 보세요. 우리도 도울 수 있다면 도와주겠다.”고 말하였다. 송병준은 마침 경성호텔의 바로 남산 가까이 동쪽에 살고 있었다. 그 외에 박영효, 이완용과도 의논했다. 조선의 고관 귀족들은 양손을 들고 이 학교 설립에 찬의를 표시하였으며 또 일면 음으로 양으로 후원을 부탁했다.


그 당시 관리 혹은 조선인으로서 유력자였던 윤덕영 자작, 박영효 후작, 이완용 백작, 송병준, 이왕직무장관이었던 민영휘, 이병무 중장 같은 분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일본인도 유력한 분이 아주 많이 참석하였다. 축사는 총독, 이완용, 쿠도우 에이이치(工藤英一) 경기도지사, 시가 키요시(志賀潔) 총독부의원 원장, 카노오(加納) 조은(朝銀) 부재(副栽), 아카이케(赤池) 경무국장, 도내가와 세이지로오(利根川淸治郞) 조선치과의사회 부회장, 미시나 케이키치(三品敬吉) 경성치과의사회장 등이 했고, 재학생 대표 인사는 지금 마산에 개업 중인 후쿠다 마스오(福田增穗)가 하였다.


여러 가지 축사 중 특히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가 감명 받은 것은 시가 키요시 원장 축사다(다른 축사는 전부 원고를 읽은 것이었다). 그는 원고를 만들기는 하였지만 원고를 사용하지 않고 정말로 힘이 들어 간 축사를 하였던 것이었다. 아마 그 당시 참석자가 모두가 동감했다. 물론 이것은 여러 계획에 참가하여 서류도 전부 보았고 단순히 총독부의원장이 아닌 학교의 고문으로서 모든 일에 참가하였던 관계로 축사에서도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었다.


개교식이 끝난 뒤 회춘원의 일부인 지금의 대학병원 서쪽에 테니스 코트 광장에서 피로연을 열었다. 그때가 4월 15일 창경원 쪽의 수양버들이 청청한 싹을 내고 있었고, 회춘원 내의 철쭉이 만발했다. 당시 접대는 전부 총독부의원과 의학전문학교의 교원 전부가 담당하여 개교식의 도우미를 거의 총독부의원과 의학전문학교 직원들이 맡아 한 상태였다. 개교 당시 손이 모자란 관계도 있었으므로 총독부 의원의 서무 관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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