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의 원장의 이야기 치과역사 94]경성치과의학교 학생 잡지 ‘앵무새’

2006.08.17 00:00:00

1923년 10월 20일 이마무라 히로시(今村汎)와 와타나베 미치오(渡邊道雄)가 잡지를 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10월 22일 두 학생은 요시나가 테이(吉永 貞), 야오 타로(失尾太郞), 오카다 타다시(岡田正)와 상의했다. 1개월 회비 50전은 비싼 듯 했으나 그대로 했다.


표제를 ‘앵무새’라고 붙였다. 이 의미는 어차피 대단한 것은 안 될 테니까, 흉내를 내는 앵무새가 좋겠다고 해 붙였던 것이다. 등사와 편집을 이마무라 히로시와 와타나베 미치오 둘이서 열심히 했다.
창간호의 표지를 그렸다. “앵무새는 어떤 새인가?”해 앵무새의 그림을 찾았다. 새의 그림을 찾고 “앵무새가 아니라 이것은 잉꼬다.” 또 다시 새의 그림을 찾아서 결국 어디서 앵무새의 그림을 그렸다.


수입 10원80전, 지출 14원 손실 금액은 이마무라 히로시가 부담했다. 이것은 와타나베 미치오가 경성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종이를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남대문 치과의학전문학교 골목에서 사왔다. 편집할 때는 야마토쵸(大和町) 이마무라 히로시의 집에서 했다. 배포는 회원에게만 했다. 와타나베 미치오가 술을 마시느라 바빠 결국 이마무라 히로시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됐다.


학우회의 발전

1923년 처음 야구부가 만들어졌고, 1924년 변론부가 만들어져 강연에 간 적이 있었다. 여름방학에 위생강연으로 야오 타로선생과 문홍숙(文洪叔)과 와타나베 미치오 3명이 출발했다. 처음 사리원, 다음 평양, 진남포, 신의주을 돌아 개성에 들렸다. 이것이 처음 강연이었다.


테니스장은 1924년 5월 13일 이마무라 히로시와 사이토(齊藤), 나카노(中野), 네모토(根本), 오다(小田) 등이 삽부터 사 와서 힘들여 만들었다. 힘들여 만들었지만 총독부 의원으로부터 잔소리를 들었다.“치과의학교의 학생은 산을 파고 뒤집어 미관을 망친다. 밟고 흩어서 아무것도 안 된다”는 등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음악부는 니시야마 유키오(西山幸男)가 와 만들어졌고, 문예부는 그 전에 이미 만들어졌다. 검도부는 1924년 10월경에 만들었다. 주 2회씩 종로경찰서 도장에서 수련했다. 그 일을 교장선생에게 보고를 못했는데 나중에 모리(森) 서장이 교장에게 말해 알게 된 교장으로부터 “그런 것이 있으면 일단 내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혼난 적이 있었다.

출처: 한국근대치의학교육사(출판: 참윤퍼블리싱)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