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승호]환자와 고객

2007.04.02 00:00:00


작년여름 어느 날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후배 한사람을 만났다. 그동안 밀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요즈음은 다니던 직장을 쉬면서 개원준비 중이라 했다.
강남 모처에 충분히 넓게 장소를 정해서 인테리어공사를 하는데,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유명 외제 승용차를 계약하러 가야한단다. 준비한 개원자금을 물으니 일본계은행으로부터 10억 융자를 냈으며, 월 1백50만원 정도를 갖다 넣으면 해결되니까 별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액수의 돈과 낮은 이자에 우선 놀랐고 전부 빚을 내서 치과를 연다고 하니 더욱 놀랄 일인데, 병원 문을 열기도 전에 외제차가 필요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범사에 고지식한 나로서는 도무지 어리둥절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고가의 치료종목에 대한 예민한 관심으로, 실력 있는 Treatment Coordinator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서둘러댔었다.


며칠 전, 얼굴도 모르는 어린 치과의사가 몇 차례 전화 끝에 드디어 병원으로 찾아왔고, 진료실 한 쪽에서 잠시 마주앉게 됐다. 모 치대 작년졸업생이라는데, 일찍이 치과경영에 관심이 있으며 실력 있는 교수급 전문치과의사를 구하고 있노라고 자신을 소개를 했다. 강남 번화가 일번지에 대형 치과종합병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접은 확실하게 할 터이니 수술 잘하는 좋은 사람 한 분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이 경영경험도 전무한 상태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규모의 병원을 구상하게 됐는지, 그 많은 자금은 누가 무엇을 믿고 그렇게 대주는 것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고, 부동산업을 하는 집 어른이 지원하는데, 서울시내 요지의 물건이란 계속해서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건물을 잡아두고 수년간 개업치과를 하다보면, 병원운영으로 저축을 하지 못한다하더라도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결국 큰돈이 남게 된다고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점심식사시간, 식당에서 모 임상과장 왈 “치과가면 앓던 이를 모두 뽑아버리고 임프란트하면, 미백까지 완전히 끝마쳐준다”는 것이다. 그 분은 임프란트 외에도 미백에 대해 치료술식과 재료, 불소도포 등 자세히 물어 와서 서로 잘 알고지내는 사이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대답을 전부 해주기란, 꽤나 인내가 필요했다. 높은 의학적 식견에 교양과 품격을 갖춘 훌륭한 분이지만, 일부 치과재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나마 치과는 비즈니스측면에서 매우 훌륭하지 않느냐고 마지막 정리까지 해버리는 데, 조금의 주저함이 없었다.


얼치기 아들, 용케 제대로 책 읽는 어린모습을 보시고서 장래를 살피셔서, 정작 좋아하지도 않는 치과대학을 보내신 부모님. 그 혜안에 고마움을 느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좀 더 충실하고 경쟁력 있는 인간이 되고자 했더라면, 온실 밖의 찬바람 비바람에 일찍부터 시련을 더 겪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라고, 곤란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널리 도울 수 있는 직업이라고, 전쟁이나 천재지변 그 어떠한 사회 환경변화에도 직분에 맞는 일을 하기만하면 언제나 대접을 받는 좋은 직업이라 듣고서, 열심히 해적판 영문서적을 뒤적거리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환자가 고객인 사실을 부정한 적 없으나, “환자도 고객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곧 이어서 옳지 못한 정보나 제보에 의한 특별세무조사가 있었다고 하고, 혹은 의사들도 환자를 앞에 두고 서로 은근히 비난을 일삼기 시작했다는데, 어떤 경우에는 refer한 개원치과의사를 직접 면박주기까지 하면서 자신만이 최고인줄, 자기도취에 우쭐대는 우스꽝스런 선배의 모습이더라니. 비록 소박해 힘없고 가난하더라도, 양심적이며 정신이 맑고 투명한 가슴의 의사가 나는 더 좋더라.
子曰 飯疏食飮水하고 曲肱而枕之라도 樂亦在其中矣니 "不義而富且貴는 於我에 如浮雲이니라."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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