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교수의 법치의학 X 파일(42)]치과 증거물로 히틀러 시신 식별

2007.07.23 00:00:00

법치의학적으로 치과 증거물과 방사선사진을 사용해 개인식별을 한 히틀러(Adolf Hitler)와 부인(Eva Braun)의 감정예가 러시아에서 발표돼 죽음의 증거를 감추려했던 그들의 의도가 어긋나게 됐음은 매우 흥미롭다 하겠다.


그 내용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Lev Brezhymenski는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날 무렵 러시아인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의 시신에 대한 개인식별과정이 있었다고 그의 저서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에서 밝혔다. 그 책은 히틀러의 시신에 대한 정보를 기술했는데 치과보철에 대한 사진과 하악에 있는 자연치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 ①과 그림 ②가 히틀러의 생전과 사후 치아의 디지털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증거로써 이용하기에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히틀러의 치아상태(Hitler"s dental remains)


상악 : 상악에는 4개의 자연치아와 9번 unit의 고정성 보철물이 남아있다. 양쪽 말단부위의 치아를 포함하는 하나의 unit로 연결돼 있다.


하악 : 5개의 치료받지 않은 자연치아가 하악에 남아있으며 치주질환과 치아의 마모가 보여진다. 좌측에 3개의 지대치가 6번 브릿지를 지지하고 있으며 우측에는 2개의 자연치아가 뒤쪽에 4번 브릿지를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인의 서류에는 X-ray가 진단을 하기 위해 촬영됐다. 이것들이 후에 미국 기록보관소에 있게 됐고, 개인식별을 위해 그들이 몇가지 중요한 자료를 내놓았다. 두부 X-ray의 검사결과 위아래 턱의 우측부위에는 후방구치들이 대부분 소실됐고, 하악의 좌측에는 제3대구치가 남아있었다. 상악치아의 전방부는 금속보철물이 보인다. 이런 소견들은 이전의 치과검사와 일치하고 있다. 하악의 치조골 흡수 또한 하악의 정면 방사선사진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분석 가운데 어떠한 사진도 치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없어 이와 관련된 정보를 주지 못했다. 그러나 스위스 국가 영화박물관의 기록보관소에서 연설하거나 웃는 모습이 있는 사진 가운데 치아의 형태를 보여주는 자료가 나왔다. 이 자료는 1934년과 1944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그 시기에 그를 치료한 치과의사의 진술에 의하면 히틀러는 그가 죽을 때 다른 어떠한 치과치료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뉴스 단편영화로부터 한 컷의 스틸사진이 선택됐는데 그 영화는 히틀러의 삶과 Leni Riefenstahl"s 선전영화 ‘Triumph of the Will’과 ‘Olympic Games 1936’이다. 그림 ④는 소련연방정부에 의해 제공된 1945년 베를린에서 발견된 히틀러로 보이는 시신의 사진이다. 또한 그림 ⑤는 치아를 슈퍼임포즈 한 사진이다.
그 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고 그 시신들을 소각하는 등 만행을 저지른 원흉의 시신도 이와 같은 유해에 불과했음을 보면서 새삼 깊은 감상에 젖게 된다.

 

① 1934년의 히틀러 모습. 원안에 하악전치의 모습이 보임. 이 사진을 디지털 확대해 발견된 시신과 비교하였음.
② 그림 ①의 원안에 있는 치아를 확대한 사진(1945).
③ 1944년에 찍은 히틀러의 두경부 X-ray 사진.
④ 1945년에 러시아사람에 의해 발견된 시신에서 하악 전치부를 찍은 사진. 원안에 있는 치아를 히틀러의 X-ray와 비교할 것임(⑤ 그림).
⑤ 치아를 슈퍼임포즈해 비교한 사진. 치아의 위치와 폭경이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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