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장주혜]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진료기록

2007.10.01 00:00:00

장주혜<본지 집필위원>


누구든지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음직한 의사선생님에 대한 인상은 하얀 가운을 입고 앉아서 차트에 뭔가 알 수 없는 꼬부랑 글씨를 써 내려가는 분이라는 것일 수 있겠다. 암호와 같은 그 내용들은 단연 아무나 알아 낼 수 없는 것으로 그들 세계에서 통용하는 전문용어라는 암묵적인 동의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 같은 내용들이 수십 년이 지나 의료계에 종사하게 된 지금도 전혀 읽어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필자가 근무하던 대학병원의 치과에 환자의 병록이 넘어와서 살펴 볼 때면 각 진료 과에서 써 놓은 진단명과 치료 과정 그리고 투약내용들이 거의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보통 약어로 축약된 데다 치과의사들에게 생소한 용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멋들어진 사인을 만들어 내듯 휘날리는 영문체로 써 내려 가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치과의사들이 C.E. C.F. 라고 달랑 적어 놓은 근관 치료기록을 그들이 어떻게 볼는지도 익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나마 법적 소송의 중요한 증빙자료가 되는 응급실 진료기록은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져 누구라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편이었다. 최근 들어 진료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시비로 인해서 분쟁의 횟수가 늘어 날 수록 의료문서기록작성과 보존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본다. 또한 의료 전문 인력뿐만 아닌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양식으로 명쾌하게 자료를 작성할 필요가 있겠다.


필자가 미국에 있던 당시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심하게 부상당한 적이 있었다. 전위된 부위를 다시 재 위치하고 골절부위에 넓적한 plate를 댄 채 여러 개의 핀으로 고정하는 간단치 않은 수술을 받아야 했었다. 어느 나라든 수술실에서 주로 근무하는 의사들은 외래에서 환자들에게 대할 때 효율적으로 짤막하게 필요한 사항만 전달하는 분위기인 듯 했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 주눅이 든 외국인 환자로서 진찰을 마치고 날 때면 늘 미진한 마음으로 진료실에서 나오곤 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귀국하면서 진료사본을 얻어 왔는데, 수술 기록 사본을 받아 든 순간 그 동안의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릴 수 있었다. 수술 당일 일어난 모든 상황이 한 페이지 가득 빡빡하게 씌어져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수술실에 들어왔는가 에서 시작해서 위 환자는 앞서 기술한 과정을 모두 잘 견뎌내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 기록은 흡사 소설의 한 부분을 읽는 것과 같았다. 바쁜 일정 중에 어떻게 이런 기록을 의사가 남길 수 있었나 의아해서 살펴보니 담당주치의의 구술을 다른 사람이 받아 기록한 뒤 다시 인증을 거친 것으로 돼 있었다.


우리가 습득한 의학, 치의학은 서양에서부터 자라나 우리나라에 이식된 것이라 전문용어들이 통일돼 수용되기가 어려운 점이 많다. 일제 강점기의 영향으로 독일어로 된 용어에 익숙하신 원로 선생님들로부터 한글 의학 용어를 익혀 온 젊은 선생님들에 이르기까지 세대간의 격차도 적지 않다. 또한 전문 용어는 알파벳으로 적으면서 한글로 문장을 완성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명색이 병원 차트인데 중학생 글씨로 또박또박 눌러 적는 게 멋쩍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료기록은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양식이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로 주의 깊게 기록에 임한다면, 국문이든 영문이든, 통일되지 않은 용어가 쓰이던 간에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없으리라고 본다.
성의 있는 의료기록 작성은 환자들이 가지고 있는 치과계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 잠재돼 있는 의료분쟁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임을 인식할 때이다.

관리자
Copyright @2013 치의신보 Corp. All rights reserved.





주소 서울시 성동구 광나루로 257(송정동) 대한치과의사협회 회관 3층 | 등록번호 : 서울,아52234 | 등록일자 : 2019.03.25 | 발행인 박태근 | 편집인 이석초 | 대표전화 02-2024-9200 FAX 02-468-4653 | 편집국 02-2024-9210 광고관리국 02-2024-9290 Copyright © 치의신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