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 교수의 법치의학 X 파일(51)]외국의 개인식별 감정사례

2007.10.08 00:00:00

개인식별 감정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여기서 잠시 법치의학적 개인식별 감정의 외국의 역사적 사례들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기원전 2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법치의학적 증거는 Leek에 의해 기술되었는데, 이는 Giga에 있는 무덤에서 Junker에 의해 발견된 금철사로 묶인 두개의 구치를 들 수 있다. Danielson은 약 900년 전에 법적 개인식별을 위해 치아인상이 사용된 것을 관찰한 바 있다. 분명히 이 전문분야는 치과영역에 있어서 새로운 분야는 아닌 것이다. 즉 역사적 배경을 보면 많은 흥미있는 사례들을 문헌에서 고찰할 수 있다.


최초의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66년에 발생한 네로의 첩 사비나(Sabina)가 네로 부인의 사형을 확인하기 위해 은쟁반에 그녀의 머리를 가져오도록 한 사건으로서 변색된 전치에 의해 개인식별이 이뤄졌다. 아마도 치의학적 개인식별이 최초로 공식적으로 보고된 예는 1452년 Castillon 전쟁에 참전한 Shrewsburg의 백작인 80세 전사 John Tallot의 개인식별일 것이며, 그 다음으로는 1477년 Charles의 변형된 나체의 개인식별이었는데, 즉 1477년 난시의 전장에서 유명한 Bold Charles의 시체가 갑옷 등 착의는 박탈되고 심히 용자 형태가 변화돼 확인 곤란한 상태로 발견됐다. 미지인은 여섯 가지 점에서 긍정적으로 개인식별이 됐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의 사고 즉 지난날 Charles가 낙하에 의해 하악 전치가 상실된 것이었다. 법치의학의 발상에 대해 살펴보면 구주방면에서는 Oscar Amoedo, 미주방면에서는 Paul Revere가 각각 선구자로 일컬어져 내려오고 있다.


1776년 6월 17일 미국독립전쟁의 하나인 방카힐의 전투에서 혁명전쟁의 지도자이며 내과의사였던 Joseph Warren 장군이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종군한 젊은 보스톤의 치과의사 Paul Revere는 Warren 장군과 Goerge Washington 장군의 주치의였다. Warren 장군의 시체는 전투후에 화장처리 됐던 바 개장을 하기 위해 그의 유해를 식별하기로 했다. 이 식별을 수행한 사람이 Dr. Paul Revere로 장군을 위해 2년전에 제작한 은과 상아를 사용한 계속가공의치의 소견으로 신원확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역사상 매우 유명하다.


그후 1849년 11월 23일 보스톤에서 발생한 사건의 Webster-Parkman 재판도 매우 유명한 사례로써 하바드대교수 Dr. J.W.Webster는 보스톤의 명사 Dr. George Parkman을 살해하고 칼로 짤라 산산조각으로 토막을 내어 일부는 난로에서 태웠다. 난로재 가운데 발견된 많은 골편, 탄화된 치아, 충전된 치아와 금속의 부스러기 등에서 Webster의 범행을 추정하고 이를 보다 정밀하게 감정하기 위해 의뢰된 바 Parkman의 의치를 만들어 준 하바드치대 창설자 Dr. Nathan Cooley Keep에 의해 금에 부착된 금속치아의 불에 탄 조각이 죽은 사람의 것으로 판명되고, 이 증거물은 배심원이 Dr. Webster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 충분했으며 Dr. Webster는 결국 교수형에 처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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