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사회 전체적으로 가치개념의 혼돈이 빈번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수용을 강제받는 일이 너무 잦은 터라,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관념적인 정의를 헐어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헐어버려야 하는 상황이 적절할 수도 있지만, 적절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타협으로 할 수 없이 받아들여 문제화될 수 있다. 그 한 예가 ‘협회’와 ‘학회’의 정체성 문제이다.

웹에서 찾아낸 ‘협회(協會)’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분야의 전문적인 일을 하거나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목적 달성을 위해 협동, 일치해 설립, 유지하는 모임”으로 돼 있고, 영어로는 society, association, league, confraternity 등으로 표기된다. 이것은 학회보다는 전문성과 대외성이 강조되는 집단이며, 학회가 협회에 소속되는 경우도 더러 있으므로 학회보다는 현실적으로 한 단계 더 큰 집단이라 볼 수 있다. 반면 ‘학회(學會)’는 “같은 분야의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학문연구 단체”로서, 영어로는 learned society, institute, academy 등으로 표기된다.

일반적으로 ‘협회’는 특정 직종의 이익 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이익단체로서 현실적 이익에 골몰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 실현을 위해 권력지향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된다. 이에 반해 ‘학회’는 보다 순수한 학술단체의 성격으로 설사 이익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학술적 가치나 궁극적으로 옳은 방향을 고집하며 권력과는 거리를 두는 것으로 통념화돼 있다. 양자의 조화로운 관계는 그 분야 전체의 포괄적인 이익을 위해 필수적이며, 대개 그 추구하는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아 ‘학회’가 ‘협회’의 전문 분야에 대한 이념적 근거와 철학을 제공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간혹 양자의 추구하는 지향점과 방법론이 상치되면 힘을 가진 ‘협회’의 현실적 이익 몰두에 대항해 ‘학회’가 원론적인 주장으로 맞서는 일이 생긴다. 이러한 경우에는 ‘협회’의 대승적 수용과 ‘학회’의 현실적 대응이 모두 절실해 진다.

‘협회’는 태생적으로 이익단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이익 추구가 방어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격적인 성격을 띠고 금도를 넘어 공익이나 사회정의 또는 시장경제 개념에 반하는 경우에는 간혹 사회로부터 강력한 지탄을 받게 된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 직종의 이익을 훼손하는 우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착오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협회’라 할지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윤리적, 공익적 개념을 엄정히 유지할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우리의 치협과 같은 전문직 단체일수록 사회의 강렬한 눈길을 받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편 ‘학회’는 본디 학술연구단체이지만 고도 전문화될수록 회원들로부터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을 촉구받는 일이 많아져 ‘협회’적 변신을 꾀하곤 한다. 현실을 도외시하고 학술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편협함은 회원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기 때문에 사실 어느 정도의 선에서는 ‘학회’의 ‘협회’적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도 도를 지나칠 경우에는 순수 학술연구단체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상실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므로, ‘학회’원의 이러한 주문은 명백한 한계를 지켜야 한다.
‘협회’의 이익 추구와 ‘학회’의 ‘협회’적 변신은 금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회원으로서의 개개인은 자신이 속한 ‘협회’와 ‘학회’로부터 목적 달성에만 귀착하지 말고 그 정체성과 가치를 수호해 변질을 막는 데에도 기여할 구성원으로서의 의무가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