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선거의 계절/신순희

2008.04.07 00:00:00


바야흐로 선거의 시절이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용 포스터와 현수막이 봄꽃보다 먼저 담장을 점령했다. 대통령 선거 끝난 지 얼마 됐다고 또 선거다. 인물도 레퍼토리도 여전한 채로 저마다 지지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왕정처럼 신분제도에 기초한 정치구조가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다수의 지지로 획득한 ‘선출’만이 유일한 국민주권 대리의 구조이자 권력기반이니 모든 선거에서 “나를 뽑아 달라, 나 아니면 안된다”는 외침은 당연할진대 들을 때 마다 불편한건 여전하다.
정말 나(그) 아니면 안되는 걸까?


잠시 일본 얘기를 하자면, 2006년 9월 당시 압도적인 지지율로 선출됐던 아베 전 일본총리는 많은 국민적 인기 때문에 다들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될 거라고 예상했었지만 달랑 1년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반면 아베가 선출될 당시 탄탄한 당내 지지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페어일 뿐이다”라며 자세를 낮추고 불출마를 선언했던 후쿠다는 아베의 갑작스런 중도하차 이후 자민당 내 모든 파벌의 간곡한 지지를 받으며 현 총리로 등극했다. 지금까지의 무난한 여정으로 보건대 그는 적어도 아베보다는 오래갈 것 같다.


어디 정치뿐일까. 2006년 말, 한국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돼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우주인 훈련을 받아온 고 산 씨가 지난달 러시아 현지 규정위반으로 우주선 탑승팀에서 탈락했다. 이제 ‘한국 최초의 우주인’은 예비팀에서 꾸준히 훈련을 받아오던 이소연 씨의 몫이 됐다.
이소연 씨나 후쿠다 총리 모두 “나 아니어도 된다(!)”고 말하며 꾸준히 스스로를 준비한 사람들이다. 주목을 호소하지 않았으나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이다.


‘광이불요(光而不耀)’라는 말이 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李光耀) 전 총리이름이기도 하고, 후쿠다 일본 총리의 좌우명으로도 유명해진 이 말은 ‘빛이 있으되 빛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활활 빛을 내고 스러지는 것은 쉬우나 오랫동안 빛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 이를 위해서는 빛을 머금고도 드러내지 않는 자기부정의 성찰이 필요하다는 고언이다. 작은 빛도 침소봉대하는 것이 자기 PR의 미덕인 세태에서 되새길 때마다 어김없이 부끄러움을 한아름 안겨주는 말이다.
언뜻 담장을 보니 세상엔 훌륭한 분들이 참으로 많은 듯하다. 국회의원 후보로 나설 정도면 어느 정도 두드러진 인품과 능력, 경력을 겸비했다고 예상(!)되는데 지역구 출마자만도 자그마치 1119명이라니 기실 공천탈락자들까지 합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나는 나라의 법을 만들 적임자다!”라고 생각했다는 건가.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 수많은 일념들에 감동할 뿐이다.


어디 정치계뿐이랴. 비록 회원들에게 투표권이 없는 관계로 눈앞에 포스터가 나부끼지는 않지만 치과계에도 어김없이 3년마다 치러지는 협회장 선거가 다가왔다. 동창회 선거네, 정책이 실종된 해괴한 선거판이네 등의 말들도 있고, 향후 삼년이 치과계의 백년대계를 결정짓는 중차대한 시기라는 비장한 분석도 있다. 내 손으로 대의원 한번 뽑은 기억이 없는데 200여분의 대의원들이 회원들의 뜻을 ‘대의’해 회장을 선출한다고 한다. 체육관에서 하나. 과히 해괴하다.
어쨌든 투표권이 없는 일개 치과의사로서는 ‘광이불요’의 미덕을 아시는 훌륭한 분이 회장이 되시기를 정안수로 빌어볼 따름이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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