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행문]엘브르즈산 등정 실패기(하)/짙은 눈발에 천둥·번개까지/김정균

2008.07.24 00:00:00


<1660호에 이어>
다음날 새벽 2시에 기상해 간단한 식사 후 발에는 아이젠, 스패치, 우모복, 장갑, 모자, 머리에는 헤드 랜턴으로 무장해 눈밭, 추위, 어두움을 대비하고 3시에 2대의 설상차에 나눠 타고 30분 후에 어제 올랐던 pastuchov rock 직전에 하차했다.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12시 반짜리 아이젠을 낀 신발은 무게만도 3킬로그램이다. 서 있기도 힘든 정도의 경사면이라 걷기가 영 힘들었다. 그나마 어제 잃어버린 스틱 대신 식당에서 빌린 스키폴이 듬직하게 힘이 주어진다.


동봉 설사면이 산장에서 바라볼 때는 완만하게 보였는데 경사가 심했다. 어두운데다 중무장한 상태라(일행 13명 , 현지 가이드 3명에 서울가이드 1명 총 17명)누가 우리 일행인지 구분이 안 된다. 그저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앞사람을 따라 가는 수밖에.


얼마를 오르니 눈이 녹지 않아 걸음거리가 한결 수월했다. 6시 가까이 되니 동봉의 오른쪽이 밝아 오면서 구름 사이로 일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따스한 날씨였다. 어느덧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 끝나고 동봉 좌측으로 길게 뻗은 경사길이 이어진다. 중간중간에 작은 나뭇가지를 꽂아 길 표시를 해 놓았다. 일행이 쉴 때는 요령껏 물과 간식을 먹었다. 오늘도 일행 중 내가 제일 처져 가이드에게 배낭을 맡기고 쉽게 오를 준비를 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얼마 후 구름이 짙어지고 눈발이 날린다. 점점 눈발이 굵어지고 짙은 구름이 몰려 오면서 폭설로 변했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겁이 덜컥 났다. 8시 50분경, 해발 5200미터 지점이었다. 가이드들이 대열을 모두 중지시켰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라 그날 등반 팀 모두 가이드들이 앞뒤로 뛰면서 모여 의논을 하더니 상황이 계속 나빠진다는 판단인지 모두 하산 하란다. 어느 팀 누구도 계속 간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산 길에는 열심히 내려와도 앞사람 발자국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눈발이 시야를 가렸다. 앞사람을 놓치면 길을 잃을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번개가 치면서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얼마전 서울 북한산에서 인명사고가 일어났으니 긴장됐다. 번개, 천둥소리는 계속되고 주위는 천지가 눈밭이라 숨을 곳이 없었다. 어느 정도 내려왔는지 경사가 완만한 곳에 몇 사람이 스틱과 배낭을 옆에 던져 놓고 웅크리고 있어 나도 힘들어 옆에 앉았더니 여자 목소리가 “Go Go"라고 외친다. 우리 팀이 아니었다.

 

번개와 천둥소리의 시간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상황 같아 계속 내려 올 수밖에. 고글에 눈이 붙어 앞이 보이지 않아 벗었더니 눈보라가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pastuchov rock 근처까지 와서는 설상차가 오지 않았는지 일행이 다 모이지 않는지 20여분을 기다렸다가 하산했다. 산장에 도착하니 12시 40분이었다. 눈은 계속 내리다가 오후 4시경 그쳤다. 눈이 그치고 날이 개이니 내일 다시 등반을 시도할 것인지를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의논이 일었다. 내 방팀들은 등반을 포기하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분위기가 바뀌고 등반쪽으로 결정이 났다. 언제 다시 이 먼곳까지 오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은 포기하고 10명이 다음날 새벽 재시도해 모두 무사히 등정에 성공했다. 눈이 쌓여 러셀하느라 가이드 등반팀 모두 힘든 과정이었으나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단다. 나를 포함한 3명은 테스골 계곡으로 하산해 계곡관광을 하고 쉬었다.


다음날 하산한 일행과 합류해 체켓봉을 케이블카로 등정해 엘브르즈를 멀리서 관망했다. 엘브르즈산 계곡은 여름에는 등산객을, 겨울에는 스키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러 항상 붐비는 곳이었다. 계곡에 빼곡한 소나무 숲을 베고 호텔공사를 하는 곳이 여러 군데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들은 겨울에는 스키 강습으로, 여름에는 등산 가이드로 생활했다.
다음날 모스크바로 다시 가서 시내 구경을 하고 9박 10일간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김정균
치협 고문·김정균치과의원 원장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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