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론]이분법 논리에 가두어진 사회/박용덕

2008.10.13 00:00:00

박용덕<본지 집필위원>


이분법이란 중·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운대로 원핵생물이나 원생생물 같은 단세포생물이 번식을 위해 사용하는 무성생식 방법이라 한다. 세포분열처럼 하나의 세포가 둘로 갈라지는 생식 방법이다. 이분법은 매우 효과적인 번식 방법으로써, 기후나 온도, 성비에 따른 개체수의 불균등, 어느 환경에서도 스스로 세대를 영속시킬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분명한 것을 좋아했는데, 살면서 점점 균형과 조화에 대해서 몸으로 익히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현상에 대해서 나 자신도 시원스럽게 답을 얘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 신뢰가 간다. 그러나 복잡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쟁점을 기준으로 양분을 할 수 있다면, 다른 것들을 배제해 복잡도를 낮춤으로써 오히려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다. 예를 들면, 호남 vs 영남, 진보 vs 보수. 주류와 비주류 이런 식은 대중의 관심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기위한 전략기법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작가의 책 내용을 인용해보자. 잡종이란 말이 주는 어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사람들은 잡종을 천한 것으로, 돼서는 안 될 것으로 여겨 왔다. 길짐승과 날짐승의 세계를 넘나들다 결국 양쪽 모두에게서 배척받은 박쥐의 이야기가 잡종의 부도덕성과 그로 인한 몰락을 잘 암시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서도, 이것저것 섞는다는 의미의 ‘짬뽕" 같은 말이 잡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잡종의 존재조건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집단은 혼혈아들인데, 미국 사회학자들은 한때 미국의 혼혈아들이 흑·백 어느 인종에도 소속감을 갖지못함을 지적하면서 이들을 사회를 불안하게 할 소지가 있는 ‘주변인들"로 규정한 적이 있다. 원래 짬뽕과 같은 미국사회에서 잡종에 대한 인식이 이러했으니, 단일 민족과 단일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의 역사적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잡종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차라리 이해할 만하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친숙한 두 범주·존재 사이에 잡종 범주, 잡종 존재를 상정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잡종을 배척하는 세계관의 많은 부분이 이분법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분법적 사고나 이것이 발전한 철학적 체계로서의 이원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체계적·분석적 사유의 기초가 됐다. 이분법은 때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사고의 틀을 제공한다. 둘을 또 둘로 쪼개면 넷, 넷 각각을 둘로 쪼개서 8진법, 넷을 셋으로 쪼개서 12진법이 만들어졌다. 이 밖에 과학과 수학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는데, 모든 정보를 0과 1만의 2진법 조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20세기 정보 이론의 철학적 기반도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의 결실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일에 대한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고, 다시 그 실행의 업무가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지면서, 각 부서는 주어진 업무만을 책임지게 됐다. 당연히 일의 전말을 아는 사람이 드물게 됐고,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단계에만 익숙해져, 무엇인가 덜떨어진 인간이 돼 버렸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속품 하나만 하루 종일 끼우는 노동자는 더 이상 세계의 주인으로서의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베버는 이러한 현상을 “합리성의 쇠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합리성이라는 형식 안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기본적인 인간성마저 부정된다는 의미에서 쇠감옥인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져 가고 있다. 과거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잡종도 만들어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듯하다. 사회는 우리에게 어린 시절 대답처럼 이것과 저것을 명확하게 대답하라고 강요한다.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우리사회는 관용과 너그러움도 부족해 턱없이 부족한 행복으로 점차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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